양복을 10년 만에 입어보는지 20년 만에 입어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농사를 짓다보니 입을 일이 없었고 별로 입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입을 옷은 땀을 흘려도, 흙이 묻어도 부담없는 작업복이었다.큰 아들 결혼 날짜가 다가오는데 혼주인 내가 입을 양복이 없다. 그래서 휴일에 아울렛에 가서 양복을 한 벌 사가지고 왔다. 마음에 드는 좋은 걸로 고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생각하고 아침 먹고 서둘러 갔는데 첫 번째 들린 가게에서 첫 번째 권하는 옷으로 바로 계산하고 오니 뭔가 손해라도 본 기분이다. 다만 와이셔츠랑 양말 한 족을 서비스로 받은 것에 흐뭇해하고 있다. 아내랑 옷 사러 가서 이렇게 쉽게 산 기억이 없다. 아내는 항상 여러 가게에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고 다리가 아플 즈음에 들린 가게에서 카드를 꺼내는데 어쩐 일인지 처음 입어본 옷을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하니 아내도 “그럼 그걸로 해~“라고 해서 속으로 살짝 놀랐다. 일단 찜 해놓고 좀 더 둘러보자 라고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결정하니 좀 싱거웠다고나 할까. 사실 난 다리 아플 때까지 돌아볼 각오가 되었는데 말이다.농사를 짓기 때문에 양복 입을 일이 없었다고 나는 말하지만 일본에는 양복을 입고 농사를 지어 유명해진 신세대 농부도 있다. 말끔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양복 상의에 중절모를 눌러 쓰고 그가 매일 가는 곳은 사무실이 아니라 논이라고 한다. 트랙트를 이용해서 그가 짓는 경작 면적이 자그마치 15헥타르나 된다고 한다. 남들과 다르게 멋을 내며 농사를 짓고 싶었다고 하는데, 의류업을 하는 형의 “나라면 양복을 입고 농사를 지을 텐데...”라는 이 한 마디를 흘려듣지 않고 용기를 내어 실행했다고 한다. 그가 판매하는 쌀 포장지에는 빨간 넥타이를 한 양복이 전면에 크게 인쇄되어 있다.“나라면 양복을 입고 농사를 지을 텐데...” 어쩌면 그의 형이 농담으로 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한 마디는 그가 스토리가 있는 쌀을 생산하고 판매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양복을 입고 농사를 짓다니 참 엉뚱하지만 기발하다. 나는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양복을 안 입은 지가 10년인지 20년인지 모르겠다고 당연한 듯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각설하고 양복에 와이셔츠에 넥타이 양말에 허리띠까지 구입하고 혼주 결혼식 준비 끝.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구두가 마음에 안 든다. 가끔 신는 검정 구두가 한 켤레 있는데 새 양복을 입고 신어보니 자꾸 눈이 간다. 깨끗하게 닦으면 되지 싶었는데 아무래도 안 어울림 화음이다. 하지만 구두약을 바르고 광을 잘 내면 되지 않을까? 조금만 더 고민해봐야겠다. 내가 결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들과 며느리가 하는 거니까... 아직 그 정도 시간은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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