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위성초등학교 일학년 시절(일천구백육십구년 삼월), 제 삶의 첫 담임 이방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올해 연세 여든여덟으로 함양군 유림면 지곡길 이십구-팔 손곡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제 나이 여덟에 만났던 선생님은 삼십 대 초반 젊고 멋쟁이셨습니다. 칠판 분필 글씨는 반듯반듯했고 ‘참 잘했어요’라는 붉은 도장이나 때론 동그라미 다섯으로 숙제 검사를 대신해 주었습니다. 세줄 손글씨 댓글로 일기장 검사는 매일 해주셨고, 옛날 이야기책 속에 무궁무진 신비로움과 흥미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가 이천십칠년 삼월 일일 욕지중 교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손글씨 편지를 보내 주셨고, 이천이십일년 구월 일일 함양중학교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학교로 손수 찾아오셔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손글씨 편지입니다. 『최교장 상재에게, 그간 안녕한지? 자네가 함양을 떠나 타지에 살고 있고, 온 세상에 코르나-일구 역병이 창궐하니 서로 얼굴 보기가 힘이 드네. 학생들 가르치는 보람과 알뜰한 가정생활로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짐작만 하네. 최군의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남달리 착하고 성실했었지. 옛날 이야기책 읽기를 좋아했고 일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썼었지. 그 당시 자네 부모님도 자식 농사에 관심이 많았었지. 특히 자네 어머님의 가정교육을 오히려 내가 많이 부러워했었네. 좋은 인연으로 학동마을을 들릴 때면 자네 어머니는 늘 은혜 갚기에 골몰했었다네. 상재가 선생 노릇을 하는 것이 다 첫 담임 공덕이라고 나를 추켜세운다네. 몇 년 전 자네가 보내준 국어 교과서 어휘 연구 논문과 손글씨 안부 편지는 저승 갈 때 가져가려고 잘 챙겨 놓았다네. 자네가 함양중학교 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영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모든 일 뜻대로 되기를 기원한다.’라는 축하 전보를 보내려고 하다가 무언가 아쉽고 허전해서 그만두었다네. 오래전 최군과 내가 처음 만났던 그때의 기억과 지금을 더듬어 가면서 두서없이 이렇게 몇 자 적어 보낸다네. 학교장으로 출근 전후 품위 유지에 각별한 노력을 당부하네. 보람 있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길 바라네. 일신우일신 일일시호일(日新又日新 日日是好日) 함양 유림 손곡에서 옛 담임 보냄』 선생님의 손글씨 편지는 일이 잘 풀릴 때나 안 풀릴 때나 언제나 저에게 용기와 지혜를 줍니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선생님의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역시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선생님의 필체 한 획 한 글자 한 구절은 다른 보통 사람들의 틀에 맞춰진 상투적인 문구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도 저에게는 소중하고 큰 힘이 됩니다. 이방환 스승님의 제자였던 것이 자랑스럽고 귀한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저도 손글씨 편지를 썼습니다. 『오십삼 년 전, 일천구백육십구 년 경상남도 함양군 위성초등학교 일학년 삼반 소자(小子) 상재(翔載)의 처음학교 첫 담임 선생님, 이(李) 방(邦) 환(煥) 字 스승님께 이 글월 올립니다. 선생님, 다볕골 함양 천령 옛터전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함양중학교는 언제 둘러봐도 편안하고 기분 좋습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면 늠름한 두류산 천왕봉의 기상이 느껴지며 교정 뒤 백암산 큰바위는 수호신처럼 함양중학교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명품 교문을 지나 교정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비룡, 왼쪽에는 교훈이 새겨진 바윗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돌멩이에 새겨진 비룡(飛龍)과 새롭고(新), 밝고(明), 바르게(正) 교훈은 일품이며 가히 국보급입니다. 반듯하고 옹골차고 당당한 사람됨을 꿈꾸는 다볕골 함양중학생들이 비룡과 같은 신사답고 멋진 삶을 살아가도록 저가 앞장서서 돕겠습니다.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제게는 천륜에 버금가는 좋은 인연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소자(小子) 상재, 왼쪽 가슴에 노란 손수건을 달고 처음학교 위성초등학교 일학년 입학식 하던 날, ‘국기에 대하여 경례’라는 선생님의 구령 소리에 맞춰 가슴에 손을 얹는 대신 태극기를 향해 머리 숙여 목례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동네 학동마을을 방문하셨을 때는 부끄러워서 얼른 절만 올리고 동무들과 뛰놀기에 바빴던 철부지였습니다. 젊고 멋쟁이이신 선생님께서는 반듯반듯한 분필 글씨와 재미나는 옛날이야기로 우리들의 어린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은혜 갚은 두류산 호랑이, 상림숲 금호미, 남해 용왕과 인어공주 이야기는 제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습니다. 유년기 가슴속 깊이 새겨두었던 선생님의 옛이야기는 신비로운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십삼 년 전, 어린 소년이 남해 용왕을 만나러 가는 푸른 꿈은 통영 욕지중에 근무하면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흘러내려 두류산이 되었다는 것과 영원한 마음의 고향 상림숲 금호미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또한 두류산과 상림 둘레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발걸음이 편해지는 것으로 보아 저는 영락없는 다볕골 함양사람인가 봅니다. 선생님, 보내주신 손글씨 편지글은 잘 받아보았습니다. 선생님의 필체는 언제 보아도 여전히 힘이 넘칩니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선생님의 손글씨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역시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선생님의 손편지 글월 한 구절 한 구절은 다른 보통 사람들의 틀에 맞춰진 상투적인 문구들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나 안 풀릴 때나 꺼내 읽는 선생님의 편지글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선물보다도 저에게는 소중하고 큰 힘이 됩니다. 선생님의 제자였던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귀한 가르침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봄이 무르익는 오월에는 교직원·학생 모두가 상림숲 둘레길과 선비길을 걷겠습니다. 웃고 걸으면서 선비정신 이어가는 함양중 교풍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여름방학 전날은 학교도서관에서 책 마실 밤샘 독서캠프를 열겠습니다. 도란도란 둘러앉아 한여름 밤 별을 보며 추억을 만들겠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햇살로 한들 벌판이 황금색으로 출렁일 무렵, 학창시절 청운의 꿈을 심어준 흰바위산(白巖山)을 오르며, ‘미래 함양의 큰바위 얼굴은 바로 여러분들이 될 것이다.’라고 격려하겠습니다. 솔향기 맡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들고 따뜻한 다볕골 함양에 산다는 자긍심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흰눈이 내리는 겨울방학 전날에는 비룡 축제를 열겠습니다. 미술 작품전시, 배우고 익힌 악기연주, 노래와 춤, 체육대회로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하나 되는 모꼬지 한마당을 펼쳐보겠습니다. 선생님, 완연한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교정의 느티나무잎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언제 들어도 시원한 감로수와 같습니다. 우리 동네 학동마을 어귀 천년 묵은 이팝 정자나무 그늘처럼 오래오래 저에게 가르침과 보살핌을 주시길 바랍니다. 스승님 내내 강건하시길 남녘 하늘 바라보며 두 손 모아 비옵니다. 임인년(이천이십이년) 오월, 선비정신 이어가는 함양중학교에서 문하생(門下生) 최상재가 삼가 적어 올립니다.』 스승의 날 아침에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 치면 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노래(윤석중 작사, 김대현 작곡)를 처음학교 첫담임 이방환 스승님께 바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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