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는 15살 먹은 운룡매 한 그루가 있다. 가지가 직선으로 뻗지 않고 구불구불 용머리를 틀면서 자라는 운룡매는 해마다 제일 먼저 꽃과 향을 내는 부지런하고 운치있는 나무였다. 산등성이 중턱에서 맞는 2월의 꽃샘추위는 그 위세가 한겨울의 한파 못지않아 눈이라도 잠깐 내리면 나무 가지들마다 얼음꽃들이 맺힐 때에도 운룡매는 작은 꽃 봉우리들을 당당하게 내오곤 했다. 그리고는 햇살 좋은 날을 골라 여지없이 소담한 꽃잎을 열어 지극히 우아하고 그윽한 향을 진동시켰다. 구불구불 기이한 형상을 가졌기에 아무런 가지라도 아무러한 꽃병에 꽂으면 한 폭의 작은 동양화마냥 멋스러움과 향기로움이 일품이었다. 이번 해에 2월에도 운룡매는 꽃봉우리를 맺혔었다. 그런데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는 오늘에도 운룡매가 꽃을 열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2월을 지나 3월의 중순에서야 잠시 꽃을 피더니 바로 들어가 버렸다. 이번 해에는 가지마다 송글송글 달린 꽃봉우리들이 꽃을 열지 못하고 무기한으로 매달려 있으면서 메말라가고 있다. 기실 매년마다 이상해지고 있는 날씨와 기후들에 어떻게든 적응하느라 몸살을 앓다가 큰 병에 걸리고 만 듯하다. 이번 해에는 벚꽃들이 3월 20일경에 만발하기 시작하더니 4월의 바람에 꽃잎들이 날렸다. 고도가 높은 우리 집 정원의 벚꽃들 역시 늘 5월에나 만발했던 지난 이력을 잊은 채 4월초에 만발하여 매실용 매화나무들과 함께 꽃을 내더니 일주일도 되지 않아 꽃잎들이 사그라졌다. 이상 기후에 의해 식물들의 생체 리듬과 생체 시계가 오동작을 하는 현상들은 요 근래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2017년 5월초 어느 아침에 일어났던 우리집 정원의 이변과 반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월말에 꽃을 피우던 개나리의 노란 꽃들이 4월에 개화를 보던 옥매화, 꽃사과나무, 매실매화나무, 복숭아나무, 벚꽃나무들과 한데 어울려 5월의 한날한시에 꽃을 만발하였다. 때 아닌 꽃잔치인가 보다 했다. 그러나 그 날 아침 느닷없는 함박눈이 바람결을 타고 내리면서 알록달록 꽃잎들에 살포시 앉더니 이내 꽃들의 생명 빛을 앗아버리고 얼음꽃들로 만들어 버리는 기이한 광경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지구의 기후 위기에 가장 민감한 식물들은 이렇게 매년 꽃 한 송이를 피워 내느라 버둥대며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위기시계에 의하면 지구 평균온도가 1.5℃만큼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지금부터 7년 3개월이란다. 1.5°C 라는 임계값을 넘으면 해수면 기온 상승으로 인해 바다의 산호초가 산화 부식되고 이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파괴된단다. 동시에 북극 해빙의 가속화는 해수면의 상승을 초래하여 대륙들이 가라앉을 거란다. 이렇게 지구에 닥칠 재앙들에 대해 우리는 가상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가면서 그 모든 것들을 이미 극명하게 인지하고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후위기 임계값을 올리는 매일의 활동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일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매일 매일 지구 온난화 주범인 탄소와 메탄을 통한 생산과 소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래야 경제가 돌아가고 정치에 힘이 붙는다면서 암묵적인 동의하에 하루하루의 생명 임계값을 공동체적으로 포기하고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오늘 하지 않는다면 7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는 운룡매의 꽃이 지상의 어디에서도 향을 내오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지상에서 가장 진화한 우리인간의 첨예한 인지능력은 오늘의 경제와 정치에 몰입하느라 지구 위기에 대해서는 느리고 더디고 무감해지고 있다. 거시적 관점을 잃은 채 한낱 정보지식력으로 하락하고 있는 인간의 정신 능력은 스스로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스스로를 위협하는 행군들을 멈추지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다 이러한 인간 정신의 생태적 변이 역시 지구 위기의 이상 현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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