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 마당에 나서면 달콤한 향기가 난다. 긴 겨울을 참아낸 꽃들이 한꺼번에 다투어 피니 어느 꽃나무에서 나는 향기인지 모르겠다. 확인해보고 싶어 곶감 덕장 앞에 있는 키 큰 자두나무 아래에 서서 코를 벌렁거려 본다. 검붉은 열매가 큼직하게 열리는 이 자두나무는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어있는데 바람 불때마다 분홍 꽃비가 내린다. 목련꽃도 향도 대단하기 때문에 만개한 목련 아래에 서 본다. 그리고 바로 옆 벚나무 아래로 걸음을 옮겨 고개를 치켜들고 코를 킁킁대어본다. 마을과 엄천강 주변에는 살구꽃과 벚꽃이 만발했다. 근데 살구꽃과 벚꽃이 이렇게 동시에 피었던가? 항상 살구꽃이 먼저 피고 지고난 뒤 벚꽃이 이어 피었던 것 같은데 올 봄에는 거의 동시에 핀다. 지난겨울이 워낙 춥고 길었고 봄이 늦게 온 탓인지 기다리던 꽃나무들이 차례 무시하고 급히 그리고 마구 피는 것이다. 하긴 한꺼번에 피는 것도 보기에 나쁘지 않다. 벌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지금 주변 벚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엔 벌들의 축제가 벌어졌다. 지금 마을은 온통 꽃향기로 출렁이고 있고 농부들은 벌처럼 붕붕 날아다니며 밭을 갈고 있다. 일하기 좋은(놀기에는 더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얼른 만들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던 플랜트 박스는 이제 펜스를 따라 자리를 잡고 큰꽃으아리, 라넌큘러스, 한련화 등등과 장미가 심어졌다. 지난 주말에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새로 조성한 밭에 감자와 야채 심을 고랑을 내고 멀칭까지 했다. 그리고 지인이 농사짓는 이웃 딸기 하우스에 놀러가서 얻어먹은 딸기 맛에 반해 딸기 모종을 많이 얻어 왔다. 딸기는 계획에 없던 거라 심을 고랑이 미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돌밭에 잡초방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상토를 열 두포 놓고 상토 푸대에 구멍을 내어 심었다. 상토 푸대를 화분으로 둔갑시킨 건데 해보니 임기응변으로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싱싱한 딸기 모종은 벌써 열매를 달고 있고 하얀 꽃이 더 피고 있다. 주말에는 감자와 야채 모종을 심으려고 한다. 씨감자는 곰례댁한테 많이 얻어놓았고 내일 함양장날에 모종을 사올 것이다. 새로 만든 밭에 올해 참외를 심을 것이다. 참외농사는 쉽고 재밌다. 제대로 하려면 마디를 세어가며 순을 따고 줄기를 유도해줘야 하지만 이게 어려운 사람은 회초리 하나 들고 다니며 위로 솟아오르는 순을 쳐주면 남은 순에서 알맞게 꽃이 피고 열매를 단다. 어려운 건 수박이다. 수박은 한 두 줄기로 잘 정리해서 질러야하고 마디 수도 잘 세어 열다섯째 마디에서 한 개만 키워야 한다. 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상추 등등은 매년 심는 것들인데 올해는 준비된 밭이 넓어 호박도 좀 더 심어 늙은 호박을 만들려고 한다. 고구마도 몇 고랑 심고 싶지만 우리 집은 산 아래 첫 집이라 산돼지가 내려온다. 얄미운 산돼지를 위한 농사는 더는 안 지을 것이다. 이십년 전 멋모르고 고구마 심었다가 산돼지에게 안 뺏길려고 잠도 못자고 개들과 함께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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