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불고 봄비 내리니 손이 근질근질하다. 지난 가을 축대공사 하면서 흙 마당이 다 없어져 플랜트박스를 새로 만들어 정원을 가꾸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풀리니 얼른 만들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이번에는 좀 튼튼하고 오래가는 걸로 만들려고 고무화분과 방부목을 준비했다. 빨간색의 고무화분은 튼튼하기는 하지만 볼품없기 때문에 상추 등등 야채나 심지 정원 꽃나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고무화분의 바깥쪽에 방부목을 덧대어 나무로 만든 화분처럼 보기 좋게 하려는 것이다. 순전히 눈가림이긴 하지만 시험 삼아 두 개 만들어 보았더니 만든 나도 속을 정도로 표시가 나지 않아 열 개를 더 만들었다. 그리고 덩굴장미를 심을 대형 플랜트박스도 세 개 더 만들었다. 마침 주문한 꽃씨도 도착했다. 열 가지가 넘는다. 노란 꽃송이가 곰털처럼 복슬복슬한 테디베어 해바라기, 골든치어 해바라기, 허브 캐모마일, 꽃잔디처럼 키울 수 있는 리빙스턴데이지, 옛날 생각나는 과꽃 그리고 가자니아, 디모르포세카, 오스테오펠멈 같은 돌아서면 이름을 잊어버리는 꽃씨 봉투들을 보며 얼른 파종을 하고 꽃을 보고 싶은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플랜트박스는 그린색 오일스테인을 발라 펜스를 따라 놓고 상토를 채웠다. 상토는 피트모스,펄라이트 등등 필요한 것들이 알맞게 배합이 되어 다른 흙을 더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돈이 좀 들어간다는 것 외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다른데서 흙을 퍼다가 화분에 채우면 한동안 잡초 솎아내느라 힘들 텐데 원예용으로 이렇게 배합이 된 상토는 풀씨가 없다. 이제 꽃씨를 파종하고 모종을 키워 정식을 하면 된다. 며칠 동안 이렇게 모든 준비가 다 되어 모종판에 꽃씨를 파종하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날씨가 쌀쌀하다. 일기예보를 보니 꽃샘추위가 시작되고 며칠 후 다시 영하로 내려간다고 한다. 그렇다. 봄은 올해도 순순히 오지 않을 모양이다. 삼월 중순이고 매화가 피기 시작했는데 춘분이 내일 모레인데 아무래도 조만간 눈이라도 한번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실 봄바람 불고 봄비 내렸다지만 이럴 때가 춥다. 어제 밤에는 벽난로에 불을 넣지 않고 난방도 하지 않고 잤더니 새벽에 추웠다. 겨울 외투랑 바지는 세탁해서 장롱에 다 넣어버렸는데 부지런 떨고 추워 떤다. 지금 파종을 하면 열흘 정도는 씨앗이 잠만 잘 것이다. 올해는 국화분재를 만들어보려고 함양농업기술센타에서 재배기술교육 신청을 하고 어제 첫 수업을 들었다. 내가 만들 작품은 화왕 외 다섯 품종. 지금 준비된 모종은 손가락 한마디 크기인데 이렇게 작은 모종이 국화 전시회 때 볼 수 있는 멋진 작품으로 자란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6가지 품종 중 가장 잘 된 것 하나는 전시회 참여를 목표로 하고 나머지 5개는 이번에 만든 플랜트박스에서 꽃을 볼 것이다. 봄이 그냥 오지 않는 것처럼 가을도 그냥 오지 않을 것이다. 정원에 꽃나무를 심고 가꾸어보니 내가 생각한대로 자라준 적이 없는 것 같다. 정원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라도 되는 듯 독자적인 인격체라도 되는 듯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하고 꽃을 피웠다. 나는 그저 와~와~ 감탄하고 사진만 찍어대는 구경꾼인 듯하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