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쓸모없는 경사진 밭에 축대를 쌓고 문전옥전을 만들었답니다. 이제 3월이라 뭘 좀 심어보려고 날이 풀리기만 고대하고 있는데 여전히 춥네요. 제일 윗 다라이(?)에는 감자를 심고 가운데 넓은 밭엔 참외와 수박을 심어볼까 합니다. 이제 막 만든 밭이라 돌 반 흙 반이고 거름도 뿌려야하는데 면적이 그다지 크지 않아 반나절이면 고랑까지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참외는 까다롭지 않아 농사를 대충해도 엄청 달리더군요. 우리 가족이 먹을 만큼 차례차례 익어주면 고맙겠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면 이웃과 나누어야합니다. 텃밭농사는 먹을 만큼 적당히 해야 하는데 하다보면 조금 더 심게 되더군요. 심을 때는 몇 포기 더 지만 수확할 때는 너무 많이 나와 처치곤란입니다. 이웃과 나누는 것도 한 두 번이고 받은 사람도 먹을 만큼 나눠야하는데 시골 사람들은 손이 커서 내가 먹을 것 조금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이웃이나 보이는 사람에게 떠 안겨줍니다. 수박은 순지르기가 까다롭습니다. 크고 맛있게 잘 키우려면 한 포기에 한개 또는 두개만 키우고 나머지 순은 다 따줘야 되는데 곁순이 나기 시작하면 이 일이 만만찮습니다. 어느 순을 솎아줘야 할 지 헷갈립니다. 그리고 순 지르기를 적기에 하지 못해서 이미 주먹만큼이라도 커버린 수박을 따내는 것도 보통 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잘 못합니다. 수박이 세 덩이 네 덩이 이미 달려있으면 마음이 약해져서 도무지 포기하지 못합니다. 고구마도 심고 싶은데 멧돼지 때문에 어렵습니다. 울타리를 튼튼하게 하면 되겠지만 그런다고 멧돼지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멧돼지는 어쨌든 방법을 찾을 것이고 이로 인해 사랑이와 오디가 밤새 짖을 것입니다. 이건 예전에 해봐서 잘 압니다.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20년 전 경사진 밭에 고구마를 심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멧돼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산 아래 첫 집이지만 잘 짖는 개가 3마리에다 양치기개 콜리도 2마리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해 초여름 고구마가 겨우 손가락만큼 굵어졌는데 밤에 멧돼지가 내려와 며칠 만에 추수를 다해 갔답니다. 멧돼지 내려오니 개들은 시끄럽게 짖기만 하고 하나도 도움이 안 되더군요. 축대 아래엔 덩굴장미를 심고 밭 경계를 따라 야생화를 가꿀까합니다. 머위랑 곰취도 좀 심어두면 좋겠네요. 경칩이 그제, 논에 개구리 알이 조금 보이긴 했는데 아직 얼음이 업니다. 개구리 울음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했구요. 이맘때면 목련이 벌어지고 크로커스가 활짝 필 시기인데 목련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고 크로커스는 꽃봉오리만 내밀어 놓고 찬바람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올 겨울은 정말 유난스럽습니다. 비도 안 오고 눈도 안 오고 추위는 아직 물러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몰래 몰래 봄이 오고 있습니다.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오고 있네요. 양지바른 곳에는 개불알꽃과 민들레가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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