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바람이 지나듯 시끌벅적 유세차가 지나간다. 남자들이 후보 지지연설을 하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 선거라 각 당의 도의원 시의원들이 번갈아 가며 하는 듯하다. 오랜 세월 정치에 몸 담고 있는 지인이 선거의 꽃은 유세연설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깔끔하게 차려 입은 예쁜 언니야가 유세차를 타고 다니며 매력적인 목소리로 또록또록하게 연설하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이 느낌은 점점 자라서 언젠가 나도 저 유세차를 타고 연설을 해보리라는 꿈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고 나는 두 번이나 선거연설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함께 했던 캠프가 한 번은 승리했고 또 한 번은 실패했다. 둘 다 내 인생에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승리의 캠프보다는 실패했던 캠프가 더 가슴에 더 오래 남아 있다. 몇 년 전에 써놓았던 일기를 꺼내 천천히 읽어 보았다.“김선생, 어제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가웠고 또 한편 짠했습니다. 곧 가을이 오겠지요. 항상 응원합니다”아침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보름 동안의 선거운동 기간, 모든 에너지를 짜내어 같이 뛰었던 모 선거 후보자다. 시린 마음을 누르고 곧바로 답글을 보냈다. “오히려 제가 드릴 말씀을 해주셨군요. 힘내세요. 해마다 가을은 오고 하늘은 푸르고 새날은 오는 법이니까요” 그의 눈빛 속에 드리워진 허탈감과 허전함의 그림자를 보니 가슴이 싸했다.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토닥여 본다. 그가 씩씩하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 힘차게 비상하기를 바란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참 아프다. 그것도 시간, 돈, 인맥 등 모든 것을 바쳐 처절하게 달렸으나 이루지 못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살다 보면 실패를 맛보지 않는 자가 누가 있으랴! 실패는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성공의 기쁨을 더 달게 맛볼 수 있는 밑거름이다. 그러니 비록 그것이 힘들지라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이미 늦은 때란 없다(「말하기 능력이 스펙이다 」중). 꿈을 이루고 싶다면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다시 걸어야 한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느낌이다. 2022년 3월 현재, 그는 없다. 가끔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얼굴을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선거에 실패한 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그가 스스로 삶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그가 많이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곧 있을 대선 때문이리라.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연일 대통령 후보들의 일정과 특별한 현장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지지율의 변화를 알리며 지지자들에게 희비를 교차하게 만든다. 어제는 두 당이 합당한다는 소식이 큰 이슈였다. 한 친구는 이 소식에 너무나 실망하여 내게 안타까움과 화남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를 통해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하거나 반대편 후보의 단점을 들먹이며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시간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유세 소리가 치열해지며 나를 뽑아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내가 비록 두 번의 선거연설원을 했지만 사실 정치에 대해 뚜렷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난 평범한 소시민의 한 사람이니 정치, 그거 머시라꼬! 일상 생활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한 친구와의 교류로 생각이 바뀌었다. 포기와 외면이 아니라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투표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 세상이 밝아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온 대통령 후보자 중에 누구 하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 청렴결백하거나 정책이 좋거나 진정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사람이 없다. 언제쯤 제대로 된 인물이 후보로, 대통령으로 나올 수 있을까. 고질적인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인간의 기본소양과 정치에 관련한 여러 내용을 꾸준히 교육해서 정치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에 입문한 힘 있는 자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자기의 배를 채우고 가족의 배를 채우려 하지 말고 국민의 배를 채우고 국민을 위해 울고 국민을 위해 웃길 바란다. 이런 저런 꼴사나운 행태에 실망하여 ‘이번 선거에 투표를 하지 마?’ 라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몇 년 만에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의 주권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꼽고 꼴사나워도 좀 더 잘할 것 같은 사람, 좀 더 나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숙연함과 책임감이 교차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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