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함양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100명에 육박했다. 이 말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처럼 앞으로 코로나는 감기와 같이 취급될 것이란 말이다. 이런 코로나의 일상성을 지인과 통화를 하며 경험한 일이다. 일상적 인사로 건강과 코로나에 관한 안부를 물었다. 지인의 답은 “아직은 걸리지 않았습니다”였다. 통화를 끝내고 “아직은” 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한 참을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그렇다. 지금은 순서의 문제이지, 확진자와 비 확진자를 구분하는 시기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온 몸으로 코로나를 먼저 경험한 사람과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될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직 코로나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속담 중에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란 말이 있다. 이 속담의 원래 뜻은 ‘사람의 악의가 가진 무서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는 ‘악의’와 관계없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번에도 ‘코로나’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마다 코로나의 무서움과 경계도 있었지만, 글의 끝에는 코로나를 이기는 것은 사람을 향한 신뢰라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미워하게 되면, 우리는 코로나가 지나간 후에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1년 전에 확진으로 격리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치료 후 퇴원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심리적 부담은 ‘나의 확진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초기 우리는 경험했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을 마치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바라보고 경계했다. 그리고 그 동선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던 시기도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와 싸워 이기기 위해 한 일이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의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우리가 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한 경계와 의심이었다. 사람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순간 추적과 격리의 정책은 사라졌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러스의 양태가 달라진 것도 한 원인이다. 또 다른 면에서는 분리와 격리로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가진 과학이란 오만으로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인간이 바이러스를 이긴 적은 없다. 예방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키워 대비한 것은 있어도, 그 바이러스가 종식된 예는 없다. 이 말은 바이러스가 싸워 정복하고 종식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는 과학기술을 통한 방법이다.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백신을 통해 예방하고 면역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가 함께 힘을 합쳐 대처하고 있는 부분이다. 다음은 개인이 실천해야 할 것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확진자는 건강한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미안함’을 가지고 행동을 절제하며 자신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또 건강한 이웃은 확진자를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호하고 돌봐주어야 한다. 사랑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며 측은히 여기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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