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루지가 나서 손톱으로 뜯어내려고 살살 건드렸더니 피멍이 들었다. 눈썹과 눈 사이에서 피멍이 커지더니 달팽이 더듬이처럼 되어버렸다. 건드릴수록 커지니 더는 손대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 아내가 진주 피부과에 간다고 해서 따라 갔다. 갈 때는 그것만 톡 떼어내려고 갔는데 검버섯이 많아 보기 싫으니 하는 김에 같이 하자고 상담사와 아내가 권해서 얼떨결에 얼굴 전체에 피부마취 크림이라는 것을 바르게 되었다. 덜 아프라고 마취제를 발라주었지만 레이저로 피부를 태우니 찌릿찌릿 따끔따끔 피부 타는 냄새까지 발바닥이 오그라들었다. 얼마 전 양념꽃게 먹다가 잇몸에 무리가 가서 치과에 갈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다. 하지만 의사가 나이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해서 그냥 왔다. 그런데 이번 피부과는 반대로 가볍게 생각하고 갔다가 일이 커졌다. 만약 피부과 상담사가 치과 의사처럼 “50년 이상 사용하지 않았소?” 하며 얼굴에 난 검버섯을 세월 탓으로 돌렸으면 간단하게 점 한 개만 떼어내고 왔을 텐데 말이다. 사실 처음 피부과 전문상담사가 계획에 없던 치료를 권하고 아내가 맞장구를 치며 등을 떠밀 때까지도 전혀 생각이 없었다. 남자가 그것도 나이든 남자가 피부를 가꾼다는 것이 나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었고 피부과는 진료비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로서는 그 돈으로 얼굴을 가꾸느니 멋진 신품종 장미를 사서 정원을 가꾸는 게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상담사가 손거울을 내 얼굴에 들이대며 적극적으로 영업을 했다. 나는 허허 웃으며 다음에 생각해보겠다고 거절했는데 아내가 “비용은 내가 낼께~” 하며 마치 나에게 양복이라도 한 벌 선물하는 것처럼 결정을 해버렸다. 선심 쓰듯 등만 떠밀고 아내는 “카드를 안 가지고 왔네~” 하며 내 카드로 그날 2인분 진료비를 결제했는데, 나중에 폰에 찍힌 결제 내역을 보고 처음엔 실수로 0을 하나 더 찍은 줄 알았다. (이거 계산 잘못한 거 아니오? 0이 하나 더 많은 거 같은데?) 하고 간호사에게 확인이라도 했으면 나는 큰 웃음꺼리가 되었을 것이다. 문득 최근에 TV에서 본 드라마 <빨간머리 앤>이 떠올랐다. 주근깨 많은 빨간머리 앤이 진료를 받으면 틀림없이 0이 두 개는 더 붙을 것이다. 도시 피부과에는 (젊은) 고객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요즘 의대엔 피부과 경쟁률이 높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도 먹고 살만하니 외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여드름이 나면 청춘의 심볼이라고 당연하게 여겼고, 나이 들어 얼굴에 검버섯이 생기면 노년의 훈장쯤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들을 피부질환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한다. 다만 나는 돈이 좀 아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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