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버이날이면 마치 학교의 연중 행사처럼 전교생 모두 부모님께 감사 편지를 적어야 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음에서 우러나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편지에 제대로 적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학생들은 선생님의 반강제적인 지시에 따라 마지못해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등의 교과서와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쓰곤 하였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고 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부모님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결혼해서 내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부모님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고 부모님이 늙고 병들고 결국 나의 곁을 떠나기 전에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리라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부모님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효도는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주 찾아뵙고 건강을 살피며 함께 따뜻한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인데 사람들은 왜 다들 돈과 성공이라는 올가미에 얽매여 부모님을 등한시 하는지 모르겠다.
수년 전 큰 아이 졸업식날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당부한 말씀이 생각난다. “여러분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효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내 아이들에게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내 아이들에게만 잘하라고 말했던 나 자신이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거울인데 과연 나는 부모님께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일들로 보람이나 성취감과 같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후회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남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에게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외에도 사랑으로 맺어진 또 다른 나의 부모님이 생기게 된다. 이는 큰 축복이기도 하지만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할 사람이 더 생겨나 그만큼의 책임감도 무겁게 된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면 그 책임감의 무게마저도 그리울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과 책임의 무게감이 아닌 그 어떤 사랑과도 비할 수 없는 부모 자식 간의 돈독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노래 가사같은 이 말을 다시금 마음 속에 되뇌어 본다.
부모님은 우리가 성공할 때까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머리는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발은 부모님 집을 향하고, 손은 부모님의 온기를 느끼고, 눈은 부모님의 건강과 주름을 살피고, 귀는 부모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입은 부모님께 따뜻한 말과 사랑을 전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효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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