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교직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여동생에게 어찌 지내냐고 물으니 대답이 뜻밖이다. 대선드라마 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단다. 명절이면 남자들은 정치적 논쟁에 열을 올리고 여자들은 한편에서 참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시선을 보내는 게 집안 풍경이었는데 집과 학교일 밖에 모르던 여자가 정치드라마에 푹 빠졌단다. 너무 재미있단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이번 대통령 선거가 흥미를 끄는 이유는 단연 새로운 주연배우와 다채로운 조연들의 등장이다. 비호감 대선이라는 타이틀도 선정적이고 후보들의 인생자체를 난도질? 하며 반전이 거듭되니 종래의 지역감정이나 이념대결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복잡한 갈등구조를 분석 해설하는 시사프로그램이 예능의 새로운 장르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선관련 콘텐츠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출연하는 평론가들의 짙은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세련된 옷차림도 영락없는 예능인의 모습인데 잘나가는 패널들은 시청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진영을 넘나들며 비판과 풍자를 사양치 않는다. 프로그램의 목적이 시청률과 구독자 수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말솜씨뿐 아니라 색다른 의상을 입거나 소품도 활용하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기도 하며 프로그램을 무한도전처럼 만들고 있는데 드라마와 예능의 결합된 “K-정치”가 만들어 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정작 대선 판의 긴장도를 높이는 것은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 한 것이 큰 문제라면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과 지역감정을 앞세우고 진영을 나누어 오랫동안 정치를 독점해 온 기성세대에 맞서 침묵하던 2030세대가 “MZ세대”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대선드라마에 “짠”하고 등장한 것이다. 젠더갈등에서 비롯된 페미니즘 논쟁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을 배경으로 그동안 침묵하던 1700만 명에 이른다는 청년세대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인데 이 세대의 맏형이라 할 30대의 야당대표가 소위 “세대포위論”을 정권교체의 필승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대단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이십대 남성을 뜻하는 “이대남”은 원래 여성청년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성향을 가진 남성청년을 조롱조로 지칭하던 용어인데, 현 정권이 페미니즘에 우호적이고 조국사태로 드러난 위선적 행태가 내로남불이라며 어쩔 수 없이? 보수가 된 세대를 말한다. 젊은 야당대표가 여기에 주목하여 60대와 2030세대 즉 “꼰대와 요즘 것들”을 연합하는 대선 전략을 기획한 것인데 과연 MZ세대의 선택은 어떨지, 야당내부의 내홍(內訌)이 심해지면서 이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로가 어찌 될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치열한 “박빙의 승부”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가운데 새해는 밝았다. 그리고 봄이 가기 전에 아쉬움과 환호가 교차하며 드라마는 끝이 날 것이다.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우리정치의 후진성을 질타하는 소리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걱정하거나 마냥 정치인들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정치의 기능은 이런 정도가 아닐까? 권위주의 시대가 지난 뒤 5년 마다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큰일은 없었다. 물론 하나같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약속했지만 세상은 고사하고 자기 진영조차 만족시킨 대통령도 없었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명실 공히 선진국이 된 세계 유일의 나라다. 정권이 바뀌어도 총성 한번 없었고 승복하지 않은 패자도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경제도 문화도 민주주의도 묵묵히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섰다. 감히 어떤 이가 독재를 꿈꾸고 어떤 정파가 5년마다 치르는 심판을 피해 갈 수가 있겠는가? 우리 정치를, 선거를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대다수 국민들이 재미있고 편안하게 선거과정을 즐기며 주권을 행사하는 壬寅年(임인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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