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든 곶감 중 어떤 상품에 ‘귀감’을 붙입니까?” 남원에서 곶감 사러 온 고객이 불쑥 물어보는데 준비가 안 된 질문이라 답변을 못하고 ‘귀감은 귀한 곶감이라는 뜻으로 만든 곶감 상푠데요...’ 하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동문서답이었고 현문우답이었다. 사실이지 그건 정말 좋은 질문이었고 나도 그게 계속 궁금하던 참이었다. 곶감은 고르지 못한 날씨가 만드는 거라 공장에서 쿠키 찍어내듯 모든 상품을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으니 그중 특별히 잘 된 것을 골라 선물상자에 담고 귀감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올해는 어떤 상품에 귀한곶감 귀감이라는 이름을 붙여줘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그동안 나는 그해 만든 곶감 중 가장 자랑하고픈 상품에 귀감1호, 귀감2호라는 메달을 수여했는데 올해는 계속 생각만 하고 결정은 하지 못했다. 올해 상품 목록은 가정용 지퍼백 곶감부터 보급형, 고급형 선물세트와 최고급형 산양삼곶감까지 열 가지가 넘는다. 2년 전부터 준비해온 산양삼곶감이 드디어 선을 보이게 되는데, 그동안 기술개발에 공을 많이 들였고 곶감은 포장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다른 좋은 상품도 많지만 산양삼곶감 또한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바람 덕에 맛 또한 예술이라 메달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올해 귀감1호 타이틀은 곰례댁이 어렵게 깎은 (아직 하우스에서 햇볕 샤워 중인)수제 대봉 곶감에 주려고 한다. 올해는 대봉 작황이 전국적으로 흉년이어서 원료감 수급이 어려웠다. 그래서 예년에 비해 대봉곶감 생산량을 절반 이하로 줄였는데 설상가상 저온창고가 고장 나는 바람에 대봉감이 일찍 물러져 상당량의 감을 자동박피기로 깎지 못하고 손으로 깎았다. 홍시 직전의 감을 손으로 겨우겨우 깎았기 때문에 외관이 매끈하지는 않지만 맛은 기대 이상이다. 곰례댁 수제 대봉 곶감은 잘 되었지만 곶감을 다 깎고 뒷일을 하던 곰례댁이 쓰러지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일도 있었다. 그 날은 농업진흥청에서 발행하는 그린매거진이라는 잡지사에서 취재하러 오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날이었다. 사진도 찍는다고 해서 아침에 머리에 염색약을 막 발랐는데 작은 아들이 와서 아주머니가 아파서 객실에 누워계신다고 했다. 나는 머리에 염색 약을 바르고 움직일 수가 없어 아들에게 “니가 운전해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와~”라고 했는데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채 가보니 같이 일하던 하동댁이 이미 앰뷸런스를 불렀다고 한다. 귀감 이야기 하다가 엉뚱한 이야기로 빠졌는데 어쨌든 그날은 곰례댁이 “내가 내일 모레 팔십이니 살만큼 살았네~ 죽어도 아쉬울 거는 없네~”라는 비장한 말로 나를 놀라게 했고, 염색약으로 떡을 친 머리로 병원까지 달려간 나도 여러 사람 놀라게 했다. 다행히 곰례댁은 부산의 큰 병원으로 옮겨 아픈 부위를 찾았고 경과가 좋아 다시 일하러 갈 테니 손이 모자라면 소리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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