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책 속에서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것은 어느 낯선 도시에서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경이롭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가 소개하는 다른 작가의 글은 한 번쯤 읽어보고 싶어 한다. 나는 몇 년 전에 멋진 친구의 추천으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던 책이고 읽고 싶은 책이었으나 그 친구가 추천하지 않았다면 머릿속에만 존재하거나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으로 오래 남아있을 것이었다. 구입과 동시에 그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아미엘의 「인생일기」를 만났다. 그리고 「인생일기」를 읽다가 외제니 드 게랭의 「성유물」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렇게 「불안의 책」과 「인생일기」, 「성유물」! 세 권의 책을 연이어서 만나는 과정은 마치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끼어들어 있는 액자 소설을 읽는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 두근두근 하는 마음과 새로운 재미가 밀려왔다. 앞에서부터 페르난두 페소아의 고백록, 아미엘의 일기, 외제니 드 게랭의 서간체 글인 이 세 권은 특이하게도 모두 일기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은 1913년부터 그가 죽기 전까지 20년간의 단상을 모은 고백록으로 작가 사후 47년 만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문학을 좋아하고 책을 어느 정도 읽었다 하는 사람은 한 번은 읽어보았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책이다. 아미엘의 「인생일기」도 세계 일기문학의 정수라고 불리며 널리 읽히고 있는 책으로 18세부터 죽음에 이르는 60세에 이르기까지 아미엘의 일생 모두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 발견되어 뒤늦게 주목을 받은 책이다. 내가 읽은 것은 무려 10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양으로 두께가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서 아미엘은 수많은 작가의 책을 읽고 사유하며 비판과 칭찬을 하는데 가장 큰 칭찬을 받은 사람이 프랑스의 문학가이며 수녀인 외제니 드 게랭이다. “외제니 드 게랭의 서간집을 처음부터 100페이지 읽고 완전히 감동에 빠졌다. 감성적인 가슴, 아 름다운 마음, 기품있는 성격, 똑똑한 머리, 색채가 있고, 단호하고 간결하며, 거만하지 않게 뛰어다니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활기를 불어넣는 문체, 매력적인 감흥, 상당한 수준의 내적 생명(P339)” “어떤 멜로디의 악센트가 이토록 사람을 꿈꾸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생활하게 한단 말인가. 한번 잊어버렸던 어떤 멜로디의 악센트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흔드는 것처럼 나에게 향수의 인상을 불러일으켰다...<중략>...놀라고 있는 독자의 눈앞에서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 (P327)” 아미엘이 이토록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니 어찌 안 읽어볼 수 있겠는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눈이 빠질뻔 하게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페이스북에 올리면 출판사 대표 친구들이 찾아 줄 것 같아 부탁을 했고, 책 마니아들이 많은 책 밴드에 올리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게시글을 올려 수소문하며 온갖 애를 써보았으나 헛수고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인 것 같아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산다는 것은 날마다 치유하고 새로워지는 것임과 동시에 또한 자신을 발견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일기는 고독한 사람의 마음의 친구, 위로의 손길, 의사다....<중략>...자기의 일기라는 것은 꿈꾸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것은 방황이기도 하고 간단한 놀이며 일을 가장한 휴식이다.” 아미엘은 그의 책 689쪽에서 위와 같이 말한다. 나는 일기의 좋은 점을 이렇게 잘 표현한 내용을 여태까지 보지 못했다. 새해엔 그 어떤 계획보다 일기를 써 보리라.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