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많은 나라를 보고, 많은 나라에 열광한다. 한민족 역사상 최강국이었던 고구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끝은 창대했던 신라, 자주정신과 저항심이 큰 울림을 주는 고려, 한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된 조선 등등, 우리에게 매력을 주는 나라들은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중의 인식에서 최근까지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백제이다. 백제는 신라, 고구려와 함께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로, 기원전 18년에 온조왕이 한강 유역에 세운 국가이다. 백제는 초기에서 중기까지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기반으로 하여 운영되었지만, 후반기 고구려와 신라의 팽창에 밀려 전라도에서 버티는 신세가 되다가, 겨우 중흥의 불꽃을 피우려 할 때 멸망하고 만 나라이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융숭한 문화와 세련된 유물, 전성기 때의 강대한 모습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국가이다. 나는 이전부터 계속 백제 문화에 관심을 깊게 가져왔다. 그 시작은 무령왕릉에 관련된 영상을 본 것이었는데, 무령왕릉은 백제 전통 문화와 중국 육조시대 양나라의 무덤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당시의 외교 및 무역 상황과 혼합된 문화 양식, 백제의 주요 문화 요소 등을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백제라는 나라가 이 외에도 어떤 매력적인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을지 기대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발을 옮겼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익산에 있는 미륵사 절터였다. 미륵사는 백제 시기 국가적 행사나 대규모 제사가 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 사찰이었으며, 절은 과거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지만, 현재 존재하는 2개의 탑인 동탑과 서탑 중 서탑은 풍파를 견디며 살아남아 결국 성공적인 복원이 이루어져 국보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동탑은 이미 1900년경 완전히 소실된 상태라 그저 모양을 추정하여 복원하는 형식으로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마침 우리 가족이 방문한 날은 다소 흐린 날씨가 이어졌는데, 가볍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미륵사지 전체를 감상하니 오히려 더 큰 감동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과거 백제 사람들의 찬란했던 모습이 내 눈가를 스치고 바람에 날려 흩어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다음으로는 익산 왕궁리 유적을 갔다. 이곳은 백제 말기 무왕 시절에 제2의 왕궁 역할을 한 곳으로, 왕궁은 하나도 없이 오직 석탑 하나만이 있었다. 쓸쓸하지만 당당하게 있는 석탑을 보니, 언젠가 왕궁이 훌륭하게 복원되어 석탑과 아름답게 어우러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산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부여로 올라갔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서울 다음으로 긴 기간 동안 수도였던 만큼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속한 시, 군중에서 가장 문화재의 수가 많은 편이다. 첫 방문은 부소산성이었는데, 성의 형체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백제인의 당대 생활을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백제 사회의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 드문드문 느껴지는 내성의 흔적이 절묘하게 다가왔다. 그 다음은 궁남지에 갔는데, 역사적인 유적의 느낌을 많이 받았던 이전의 명소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쉴 수 있는 안정감이 특기인 곳이었다. 중간에 본 오리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현재와 과거의 절묘한 조화가 아닐까, 하는 감상평이 생각나기도 했다.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다음 목적지였던 부여 나성은 어쩐지 공원 같으면서도 처연한 폐허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왔다.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던 백제의 병사와 백성들의 정기가 나에게 어떠한 신호를 보내 준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다음에 그 신호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기대한다. 부여 정림사지는 나름 도심 내부에 위치했는데, 엄청난 화려함이나 강렬한 기상보다는 적절하게 주변에 녹아들어, 융합과 관련한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주었다. 단지 잠깐 보기만 하면 별로 멋지지 않은 것 같은 유적지 같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과거인과 현대인의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여행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유물이 잠들어있는 국립부여박물관에 갔다. 국립부여박물관은 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흔치 않은 곳이었으며, 규모와 내부의 실속을 모두 알차게 마련한 좋은 박물관이었다. 계획적인 조경 속에서 수많은 유물들과 교감하였는데, 세밀하고 정교한 장신구와 은은한 미소와 자비 속에 빛나는 불상들, 앞으로도 우리의 미래를 비춰줄 소중한 역사 기록물들이 모두 나를 환희에 젖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그 유물에 다다랐다. 특별히 따로 독립 전시가 된 그 유물은 멀리서도 나에게 고고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던 나는 보았다, 그 유물의 전신을. 다소 어두운 조명으로 치장되고, 단단한 유리에 보호받는 그 유물, 바로 금동대향로를 보게 된 것이다. 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1.8 cm이고 크게 4개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용 모양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진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오른 향로 뚜껑, 뚜껑 위 봉황 장식이 그것들이다.금동대향로는 백제가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연꽃을 베이스로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신선이 조각되어 도교와 불교적 요소가 모두 있다. 무엇보다도 그 조형 솜씨가 워낙 훌륭하고 뛰어난 수준이라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손꼽을 수 있는, 능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조상들의 걸작이다. 그리고 이런 학계의 평이 오히려 모자라다 여길 만큼, 나는 감탄과 찬사에 여력을 쏟아냈다. 어쩌면 그날 그 순간에 내 인생의 목적 중 하나가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나는 하루 동안의 길다고 하면 긴 모험을 끝내고 귀환했는데, 시간관계상 가지 못한 백제 역사의 마지막 도시, 공주는 이후에 방문하게 된다. 공주에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 또한 언젠가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