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며,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온 우주가 내게로 오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참으로 공감 가는 말이다.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만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한 통의 손편지나 곱게 포장된 선물처럼 누군가 다가오는 인연이 있다면 얼마나 가슴 설렐까. 피천득이 쓴 ‘인연’이라는 수필 중에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얼마나 가슴 절절한 인연인가. 비록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로버트 제임스 월러가 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주인공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 커플이다. 나흘간의 사랑 끝에 일생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결국 죽어서 영혼으로 만나는 사람들.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나 첫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기에 해당될 확률이 더욱 높다. 피천득은 수필과 시를 많이 썼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유독 인연 하면 피천득을 떠올리고 피천득 하면 그의 수필 ‘인연’을 떠올리는 것은 그만큼 인연이라는 수필이 그의 대표작이 되어 사람들에게 그를 각인시키고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천득과 그의 수필 ‘인연’은 참 좋은 인연인 것이다. 나이 젊어서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배우고 성숙해지면 삶에 유익이 되는데 나이 들어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에 만나는 인연은 더욱 신중하게 맺을 수밖에 없다. 삶이 그리 길지 않으므로. 중년일수록 더 좋은 인연을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인연이란 어떤 인연일까. ‘끝이 좋은 인연이 좋은 인연이다’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좋은 인연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빌려오고자 한다. 그의 저서 <담론>에는 최고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관계,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이다.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관계야말로 최고의 관계이다” 인연과 관계. 글자만을 두고 볼 때는 큰 차이가 느껴진다. 일단 시각적으로 봤을 때 ‘인연’은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이응이 초성을 이루고 있는 단어이고 ‘관계’는 모나고 각진 기역을 초성으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래서 인연은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반면에 관계는 딱딱하고 거친 느낌이다. 인연에 관한 많은 글을 읽어 봐도 인연은 불가항력으로 내 힘이 닿지 않는 하늘이 맺어준 것이고 관계는 내가 노력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또 학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인연은 문학이고 관계는 수학이나 과학이며, 인연이 시라면 관계는 평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사전을 찾아보니 인연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이다.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 현상이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인연과 관계는 그렇게 동떨어지거나 판이하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 그럼 이쯤에서 관계라는 단어를 모두 인연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서로를 따뜻하게 해 주는 인연, 깨닫게 해 주고 키워주는 인연,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인연이야말로 최고의 인연이다” 위로와 배려, 사랑으로 서로의 가슴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항상 자신에 대해 각성하게 하며 더 발전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이끌어 주는 인연!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인연인가. 만나려면 이런 사람, 이런 인연을 만나야 하리. 그러면 중년이, 삶이 행복할 테지. 눈이 내리면 좋겠다. 오늘따라 첫사랑 그 애가 생각난다. 첫사랑이 그리운 날, 바람은 불고 마음은 끝없이 안개 속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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