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봉감이 귀한 해다. 대봉감은 홍시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전국 감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는데 올해는 대봉감이 흉작이었다. 대봉감 외 둥시, 반시 등등 다른 산지 감도 작황이 좋지 않았고 지리산 지역에 많이 생산되는 고종시만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었다. 대봉감은 작년에도 가격이 두 배 오를 정도로 작황이 좋지 않았다. 감나무는 해거리를 확실히 하기 때문에 올해 대봉감은 풍년이 들 거라고 다들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봉곶감을 많이 만드는 나는 그래서 원료감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천정부지로 오른 가격 때문에 결국 생산량을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같이 대봉감이 비쌀 때에는 곶감을 깎아봤자 인건비 건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 생산량을 줄인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사실 올해만은 대봉곶감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는데 매년 하던 걸 전혀 안 할 수는 없었다. 설상가상 저온창고 고장으로 감이 일찍 물러져 깎지 못하는 대봉감이 어마무시 많이 나왔다. 나오는 대로 일하는 아주머니들 다 나눠 드렸는데 끝도 없이 나오는 바람에 나중에는 손으로라도 깎아 보기로 했다. 홍시가 되기 직전이라 잘 마를 지 말려봐야 아는 거지만 깎을 수 있는데 까지 깎아보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곶감을 깎으셨다는 곰례댁 아주머니는 이런 게 사실은 제일 맛있다고 하시며 아침부터 빛의 속도로 깎아내신다. 감이 계속 물러지고 있으니 하나라도 더 깎으려고 손을 놀리시는데 어찌나 활약이 뛰어나신지 칼을 한번 휘두르면 수십 명의 악당이 퍽퍽 쓰러지는 영화를 보는 듯하다. 자동 박피기로 깎는 단단한 감은 공처럼 둥글고 예뻐 보이고 손으로 깎는 홍시감은 보기에 일단 먹음직스럽다. 사실 바로 입에 넣어도 될 정도로 맛이 들어있기 때문에 굳이 말릴 거 없이 그대로 얼려 여름에 아이스홍시로 먹으면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할 것이다. 이참에 아이스홍시도 만들어보려고 몇 접은 박스에 진열하여 냉동 창고에 넣어두었고 아들은 이참에 또 아이스반건시를 만들어 보겠다며 곰례댁이 손으로 깎은 대봉홍시를 컵에 한 개씩 개별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올해 깎은 대봉곶감은 상태가 예년에 비해 확실히 다르다. 비록 홍시가 많이 나와 원료감 손실이 결코 적지는 않지만 손으로든 자동박피기로든 일단 깎아놓은 것은 당도가 월등히 높은 곶감이 될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곶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깎아야할 감이 물러져 올해 대봉곶감농사는 망했다 싶었지만, 홍시가 많이 나와 원료감 손실은 컸지만 일단 깎아놓은 감을 보니 어쩌면 전화위복이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어쨌든 깎아놓은 것들은 그만큼 예감이 좋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올해 대봉곶감의 역사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느낌대로 된다면 나는 내년에는 일부러 대봉감들이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해와 비슷한 상황에서 깎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와인 농장주가 해외여행을 하는 바람에 수확시기를 넘겨 포도를 수확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를 놓친 포도주가 대박이 나서 그 뒤로는 매년 그렇게 늦 수확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늦게 깎게 된 대봉감도 그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곶감으로 변신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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