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다니며 과도하게 반응하는 유튜버 맹신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김내훈의 <프로보커터>는 주목경제시대의 문화정치와 관종 멘털리티를 연구하면서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을 프로보커터(도발자,선동가)로 명명하고 도발방식과 사회를 어지럽히는 과정과 실체를 분석한다. 프로보커터들이 충격적인 발언과 영상으로 어그로를 끌어내어 주목을 받음으로서 경제적 이득과 또 다른 무엇을 노린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정 너머 ‘우리’에 속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도발에 끌려 다니는 것이 현대사회의 미묘한 현상이다. 늘 궁금했다. ‘우리’라고 불리는 구독자들, 혹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늘려주는 사람들은 어째서 도발자들의 근거없는 입을 믿고 소란과 어지러움 속으로 주저없이 진입하는가.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자들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최소한의 그 양식도, 이런 의문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보커터>는 ‘아모이 이’의 사례를 프롤로그로 시작하며 주목경제 시대의 문화정치와 관종 멘털리티에 대해 조목조목 짚는다.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음으로서 과도한 영웅심리에 젖을 뿐 아니라 조회수를 폭발시켜 돈을 벌겠다는 프로보커터의 삐뚤어진 욕망도 언급한다. ‘주목과 관심이 돈으로 환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김내훈의 단언은 페이스 북에 등장하는 가짜뉴스와 관련해 이전에도 많이 언급되었지만 김내훈은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어지럽히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진중권·김어준·서민·가세연·이아노풀로스를 소환한다. 실제로 이런 실명의 발언을 인용한 수많은 기사의 댓글은 조롱 일색이다. 이들 중 논객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논객이라기보다 언론과 SNS를 기반으로 프로보커터식 도발과 자극으로 주목을 이끌면서 이들에 열광하여 이성을 잃는 현상을 즐긴다.
프로보커터들의 도발적인 발언과 영상은 쉽게 동요하고 쉽게 맹신하는 자들을 구독자로 만들고 세뇌의 늪으로 인도한다. 그들에게 휘둘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발언을 인용해서 편향된 여론을 생산하는 언론은 프로보커터를 광기의 늪으로 내몬다. 그러나 김내훈처럼, 유발 하라리처럼, 수전 손택처럼, 한나 아렌트처럼 세상의 어떤 현상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보커터에게 끌려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읽지 않는다.
세상에는 어떤 도발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지켜보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묵살하거나 도외시하는 방식으로 부동의 자세를 취한다. 주워들은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로 흥분해서 떠드는 주변의 말들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 쉽게 붙은 불은 쉽게 꺼진다는 것, 일시적인 유행같은 현상이 세상을 소란하게 만든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수그러든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다. 전면에 나서지 않으나 사유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견해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 부동층은 침묵하고 그 침묵이 굳건한 견해가 된다. 어느 쪽으로도 쉽사리 치우치지 않는 것은 독립적인 자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설민석을 과도하게 띄우는 것을 보면서 “학원강사의 쇼맨십이야, 변사같잖아. 텔레비전은 그걸 이용하는거고”라던 내 말에 동의하지 않던 친구에게 나와 똑같은 말을 하는 김내훈의 <프로보커터>를 권하고 싶다. 읽지 않을 것을 뻔히 알지만 언급은 해야겠다. 인간은 여러모로 불가사의한 존재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