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 날씨는 곶감을 깎아 말리기에 결코 만만찮다는 걸 나는 요 며칠 이어진 비를 맞으며 느꼈다. 예보에는 월요일 오전 비가 잠깐 오고 계속 맑겠다고 했는데 역시나 구라청 예보대로 월요일 오전에는 오지 않던 비가 오후부터 내리더니 화, 수, 목, 금요일까지 이어졌다. 비가 이어지니 양파 농가에서 양파를 심는 일이 지연되었고 양파를 심고 곶감을 깎기로 예정된 사람들도 일정이 모두 미루어졌다. 저온 창고에 감을 가득 쌓아놓고도 정작 일손이 없어 곶감을 깎는 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함양읍에 마침 사람이 있다고 하여 어렵사리 개시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원료 감을 보관중인 저온창고가 고장이 나서 감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야했는데 갑자기 저온창고를 수배하느라 어려움이 있었고 수백 상자의 감을 홍시가 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데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래저래 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손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일손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설을 한 권 쓰도 될 과정을 겪었지만 어쨌든 모두 해결했다. 곶감 작업 개시 첫날 이른 새벽 읍에서 일손 두 명을 태우고 포트 트럭을 채찍질하여 당두재를 넘어오는데 지리산 자락에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산의 아랫자락은 수천 가지 때깔로 단풍이 들었는데 높은 능선엔 하얀 눈이 쌓여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처럼 보였다.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탄성이 터졌다. 이른 시간 낯선 사람끼리 힘든 하루 일을 시작해야한다는 부담감에 모두 입을 꼬옥 다물고 긴장하고 있다가 고개 넘어서자 이 놀라운 풍광이 나타나니 조바심이 풀렸다. 엄천강에서 피어오른 물안개와 어우러진 이 웅장한 지리산의 설경에 놀란 바보들이 입을 헤벌리고 우와~우와~ 탄성을 질렀고 설경에 반사된 아침햇살은 방전된 가슴을 한순간에 충전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엄천강에서는 물안개가 지리산 자락을 훑으며 아름답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산자락과 강으로 쏟아졌고 이 황홀한 풍경을 보며 나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래~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내가 살고 있고 나의 가족이 살고 있고 나의 일터가 있는 것이다. (내리막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을 한 번씩 이렇게 멀찌감치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멋진 풍광 속에서 살며 도대체 내가 뭐가 아쉬워 안달을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며 겪는 이런 저런 어려움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오늘 하루 일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가상 세계처럼 느껴진 이 아름다운 풍광 속으로 스며들어 즐겁게 곶감을 깎았다. 뜻밖에 행복했던 하루 일을 마치고 나니 택배가 <사소한 행복> 저자 증정본을 배달해 주었다. 지난 7월에 <고양이를 모시게 되었습니다>를 출간한 지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출판사에서 또 책을 만들어주었다. 내가 곶감을 만들며 틈틈이 쓴 영농일기를 <사소한 행복> 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 째 수필집을 엮어준 올림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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