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알고 좋아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같은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한 어느 여자가수가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작든 크든 바람의 움직임으로 인해 살아야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로 나 역시 너무나 좋아한다. 내가 이 구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 초 제목에 심장이 뛰어 구입한 신상언 씨의 수필집에서다. 수필집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폴 발레리가 쓴 시의 일부임을 알고 조금 놀랐지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당시에 샀던 책을 훑어보니 연인이었던 한 남자, 지금은 남편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나의 깨알 글씨가 적혀 있었다. ‘참 신선하네. 언젠가 남편에게 보여 주어야지’ 생각하니 행복한 마음이 솟구쳤다. 바람! 바람! 바람! 나는 바람이 좋다. 어릴 때 친구들과 올라가서 달리기도 하고 연도 날리며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놀았던 집 근처 논이 있다. 시골이라 겨울에 바람이 아주 세게 불곤 했는데 어느 날 그곳에 가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날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 둘, 셋! 안타깝게 날아오르지는 못했으나 그날의 즐거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람은 인기가 많은가 보다. 시인과 작가와 가수들이 바람을 소재로 수많은 글을 쓰고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폴 발레리가 그랬고 헤르만 헤세가 그랬고 윤동주와 박두진이 그랬고 이병률이 그랬다. 윤석중과 박태현이 만든 동요를 수많은 동심이 노래했고 가수 김범룡도 바람을 노래해서 인기를 누렸다. 바람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나 보다.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 고추 땅콩을 찾아오기도 하고 매화, 벚꽃, 장미 등 수많은 꽃을 찾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두 손을 잡고 큰소리로 웃으며 걸어가는 연인의 옷자락과 아기를 안고 사랑스레 눈웃음짓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에 머무르기도 하며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이마를 닦아주기도 한다. 바람은 색깔을 가지고 있나 보다. 하얀 장미꽃잎 위에 앉으면 신부의 드레스처럼 하얀 순백의 색이 되고 줄지어 걸어가는 노란 병아리 깃털을 어루만질 때는 노란색이 되고 구중궁궐에서 님 그리다 죽어간 소화의 아픈 심장 위에 피어난 능소화 꽃잎을 토닥일 때면 주홍빛이 되기도 하니까.바람은 참으로 자유로운가 보다. 골짜기에 있다가 바다에 있다가 도심의 한가운데도 있다. 우리 집 옥상 텃밭에서 볼 수 있고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이방인>과 <페스트>를 쓴 알베르 까뮈의 나라 프랑스에도 있다가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를 쓴 장미를 사랑하고 장미와 함께 죽어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나라 독일에도 있다가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쓴 레프 톨스토이의 나라 러시아에도 있다. 그리고 <불안의 서>로 뭇 사람에게 사랑받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고향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은 매력이 넘친다. 몇백 년 전 한 소년은 몽골 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험난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를 제패할 꿈을 가졌다. 몇십 년 전 한 소녀는 집 근처 논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서 날개를 폈다. 그리고 아직도 바람은 소녀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애무하듯 살랑이며 불어와 부드럽게 목에 닿는 해거름 유월의 바람, 얼마나 감미롭고 멋진가. 어디든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며 만나고 싶은 것을 만날 수 있는 바람은 참 좋겠다. 바람은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알고 있을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바람이 사람이라면 분명히 훌륭한 작가나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가끔 부수고 날려버리며 성질을 부릴지라도 한쪽 눈 질근 감고 넘겨줄 일 아닌가. 한때는 그리움과 고독으로 다가와 마음 짠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기만 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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