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14일은 거대한 세력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며 당시의 무분별한 살충제 남용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어가는 생태계의 상황을 알림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환경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정부를 변화시켰으며 이후 환경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 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카슨이 57세라는 안타까운 나이로 타계한 날이다.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쓴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은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여전히 감동을 주고 있다.카슨은 작가가 되고자 했는데 대학에서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꾼 후 해양생물학자로서 글을 쓰는데 주력하면서 『우리 주변의 바다(Sea Around Us)』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탄탄한 과학적 지식과 발로 뛰는 현장조사에 뛰어난 문학성을 겸비한 그녀의 글쓰기는 이후의 커다란 사회적 역할을 암시하고 있었다. 당시 스위스의 화학자 헤르만 뮬러는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라는 합성물질이 매우 살충효과가 높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194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2차 대전 동안 비밀리에 DDT 수송 작전을 펼쳐 열대지방의 전선에서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에 시달리던 병사들에게 큰 효과를 거두었다. 인류를 구원할 물질로 여겨진 DDT는 전쟁이 끝난 후에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박멸하고자 했던 해충들은 내성이 생김으로써 더 강력한 알드린, 디엘드린, 파라티온과 같은 물질이 개발되었다. 이는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는 다른 생물들이나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에 총체적 피해를 안겨주었다.이와 같은 생생한 현장을 고발하고 그 피해를 분석하면서도 문학적으로도 완벽한 책 『침묵의 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주간지 『타임』, 그리고 화학업계는 방해를 물리치고 1962년 출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케네디 대통령은 살충제 실태조사를 위한 과학자문위원회 구성을 지시하게 되었고 방송사인 CBS는 황금시간대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제작해 내보냈다. 더불어 야생보호법이 제정되고 이후 수많은 환경규제법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1964년 4월14일 유방암으로 사망했고 유해는 그녀가 사랑했던 바다에 뿌려졌다. 카슨의 영향으로 60년대 후반 생태학이 새로운 학문분야로 올라섰으며 많은 환경단체들이 만들어졌고 1970년 4월22일에는 세계 곳곳에서 2천만 명의 환경을 걱정하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섬으로써 “지구의 날”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72년이 되어서야 미국 내에서 DDT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고 이 영향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는 1979년에 사용이 금지되었는데 최근에도 가끔씩 농축산지에서 DDT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금지된 지 40년이 된 물질이 여전히 잔존해 있다는 것은 당시 얼마나 다량의 DDT가 뿌려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힘없는 여성 과학자 한 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우리는 레이첼 카슨을 통해 생생히 볼 수 있다. DDT 남용을 넘어 이제 기후위기와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으로 전 인류가 고통 속에 있는 지금 카슨은 안락하게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행동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녀가 CBS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다음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자연의 균형은 생물들 사이에, 그리고 생물들과 환경사이의 일련의 상호관계로 만들어진다. 여기에 억지로 개입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대로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과의 전쟁은 결국 우리 스스로와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