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소나타 1번 1악장을 글랜 굴드 연주로 들어봅니다. 바렌보임 연주로도 들어봅니다. 20세기 최고라는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등 여러 대가들의 연주도 있지만 베토벤의 피소1번 연주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하나는 글랜 굴드 연주 그리고 또 하나는 안 글랜 굴드 (바렌보임, 리히터... 등등의 연주) 바렌보임이 랑랑에게 “너는 왜 베토벤이 내기를 원했던 모든 소리를 내지 않느냐” 했다는데, 글랜 굴드는 베토벤이 원했던 소리 외 악보에 기록할 수 없었던 흥겨운 기분까지 읽어낸 것 같습니다. 바렌보임이나 리히터의 연주가 창으로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라면 굴드의 연주는 창을 열고 나가서 꽃나무 아래서 향기를 맡으며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는 것 같네요. 알레그로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세번(?) 반복되는데 리히터나 바렌보임의 연주는 계곡물 흐르듯 빠르게 흘러가는 반면, 굴드의 연주는 봄의 정원에서 여유롭게 꽃을 구경하고 향기를 맡고 흥에 겨워 어깨도 들썩이는 움짤입니다. 당시 25살이었던 베토벤이 내기를 원했던 소리와 느낌까지 굴드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겨울은 굴비 아니 굴드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굴드의 바흐, 베토벤 연주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평소 지루하게 들리던 음악까지 즐겁게 들립니다. 덕분에 겨울 내내 그리고 봄까지 이어진 곶감 포장을 힘든 줄 모르고 끝낼 수 있었답니다. 글랜 굴드와 함께 하는 작업은 시간 단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 형식을 갈아타며 흘러갑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 아무 날 또는 바람 부는 어떤 맑은 날 오전9시, 10시, 11시 세 시간 곶감 포장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알레그로, 라르고, 미뉴에토, 알레그레토, 미뉴에토, 프레스티시모로 시간이 흐르는 것입니다. 잘 말라 달콤해진 곶감이 음악이 흐르는 대로 주제와 부주제와 변주를 갈아 타고 포장재 속에 자리 잡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연주가 끝나면 상자를 냉동 창고로 옮겨 차곡차곡 쟁여둡니다. 그리고 그날의 곶감 작업 일지에 오전 몇시 부터 오후 몇시 까지가 아니라 "귀감1호 32상자/ 바흐 인벤션 1번부터 16번까지/굴드, 말러 교향곡2번, 5번/아바도... "로 메모합니다. 훌륭한 연주는 작업자의 힘을 들어주고 작업의 질도 높여줍니다. 귀감에 대한 고객의 베스트 후기를 보면 나는 좋은 음악을 들려준 연주가에게 보내는 관객의 환호와 박수가 떠오릅니다.왜냐하면 좋은 후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좋은 음악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유튜브에서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광고 때문에 번거롭습니다. 한동안 스맛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중간 중간 광고로 끊기는 시간이 많아 작업장에 아예 오디오를 갖다 놓았더니 다양한 음악 옵션에 작업의 질도 높아집니다. 굴드의 베토벤 피소 시디도 들을 수 있고 FM에서 소개하는 귀한 음반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덕분에 작업은 모두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냉동 창고에 쟁여둔 귀감을 하나씩 택배 포장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앞마당 산수유와 목련꽃은 바람에 떨어지고 홍매가 절정입니다. 벚나무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이때 감나무는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한 해 농사가 끝나고 또 한 해 농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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