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오면 국수, 라면 떡볶이, 부침개를 해 주던 노상선(55세)씨는 어릴 때부터 분식집이 하고 싶었다. 2008년부터 음식점을 한 그녀는 분식집 대신 맨 처음엔 고깃집, 한정식집을 거쳐 연장전야식포차를 운영한지 올해로 4년째다. 노상선씨는 “뭘 해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죠. 음식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녀 인생의 첫 요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불 때서 지은 밥이다. 어머니가 외출하신 저녁, 아버지도 오빠도 없는데 상선씨는 배가 고팠다. 본대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아래는 시커멓게 타고 중간을 설익고 맨 위는 죽이 된 3층밥을. “애써 하라고 해도 못하는 3층밥을 제가 지었죠. 그래도 아버지가 기특하다고 칭찬하셨는데 3층밥이 제 인생의 첫 요리에요”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며 평범한 엄마, 아내로 살아가는 노상선씨에게 예고없이 큰 파도가 덮쳤다. 손님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다. 병원에서는 보청기 착용을 권했다. “나이도 젊고 아직 들리는데 내가 보청기를 껴야 한다니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그녀가 보청기를 끼기까지 4년의 망설임이 있었다. 4년 후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오른쪽 귀는 기능을 상실한 후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갑자기 못 들으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이제는 왼쪽 귀에라도 의존해야 하니 보청기를 착용해야만 했다. 6년간 보청기를 끼고 생활하던 그녀는 지난해 갑자기 귀가 나빠졌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처음엔 보청기가 문제인줄 알았지만 더 이상 보청기로도 해결할 수 없게 된 그녀의 청력. 결국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받은 후 인공와우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공와우는 달팽이관에 전극을 삽입하여 청신경에 전기 신호를 직접 전달하여 소리를 듣게 해주는 장치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병실에 와서 엉엉 울었어요. 그때 설암에 걸린 40대 환자가 이겨낼 수 있다고 약해지지 말라며 저에게 쪽지를 주었어요.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 환자의 위로가 큰 힘이 되었어요” 그때부터 그녀는 열심히 치료받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3개월 후 수술날짜가 잡혔지만 그녀는 장사를 쉬지 않았다. 음성인식 어플을 휴대폰에 깔았다. 손님이 휴대폰으로 주문을 하면 자막으로 나타난다. “제가 듣지 못하니 주문하는데 불편하더라도 양해해달라고 가게 벽에 쪽지를 붙여놓고 장사를 했어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의 인생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절망에 휩쓸려 있기보다 밝게, 열심히, 평소처럼 자신의 삶을 이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함양신협 이성국 이사장은 신협사회공헌재단에서 지원하는 성금을 노상선씨가 받도록 하여 수술비에 큰 보탬이 되었다. “닭이봉 경숙이가 제 친구에요. 그 친구를 통해 이사장님이 제 사연을 알게 되어 큰 도움을 받았지요. 주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뭐라 감사하다 인사를 해야할지...” 수술 후 그녀의 생활은 더욱 활기차졌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저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이 일을 계기로 노상선, 나 정말 인생을 잘 살았구나 하고 생각했죠” 밝은 그녀의 에너지는 이제 ‘연장전 야식포차’의 인기메뉴인 닭볶음탕과 꼬막무침을 찾는 손님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인공와우는 재활도 열심히 해야 하고 듣기 연습도 많이 해야 한다. 가게 일을 도와주고 재활도 도와주는 아들이 큰 힘이 된다. 요즘 아들 왈 “이제 엄마가 너무 잘 들어서 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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