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한설이 유난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무거운 사람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연은 속절없이 꽃을 피워 봄을 알리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엔 갖가지 꽃이 피는 것을 보는 즐거움만 한 게 없으나 이래저래 발이 묶인 우리에게 상림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남도의 봄꽃 축제들이 하나 둘 취소되는 아쉬운 날들이지만 멀리 가지 않아도 상림에서 다양한 꽃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활엽수 숲인 상림은 생물다양성이 존재한다. 잎이 지는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햇살이 땅위를 파고들며 작은 풀꽃들에게도 꽃을 피울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초록 잎이 우거지기 전 잠깐의 봄 햇살 속에 키 작은 식물들은 이른 꽃을 피워 내며 또 한 해를 살아낸다. 따뜻한 봄바람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핀다고 해서 ‘바람꽃’이라 불리는 이른 둥이 꽃은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멀리서도 불러들이는 귀한 꽃이다. 바람꽃 중에서 비교적 큰 꽃(3~4cm)을 피우는 ‘꿩의 바람꽃’은 상림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산책길 옆에서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새초롬하게 하늘 향해 활짝 핀 하얀 꽃을 볼 수 있다. 잠깐 사이에 홀연히 피고 지기 때문에 때를 놓치면 한해를 또 기다려야 한다. 고깔 모양으로 길게 뻗어 한쪽 끝이 입술처럼 벌려져 있는 모습의 현호색은 여러 개의 꽃들이 뭉쳐 덩치가 커보이게 꽃을 피운다. 혼자서는 곤충을 불러들일 경쟁력이 없기 작은 꽃송이를 가진 녀석들은 주로 한데 뭉치는 전략을 세워 다음세대를 이어간다. 뿌리내린 땅속의 성분에 따라 꽃잎의 색깔이 달라지는 현호색은 연보라, 연파랑의 화사한 색깔로 산책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발길을 이끈다. 토종튤립으로 불리는 산자고는 햇살이 좀 더 깊어야 꽃을 피워낸다. 뿌리에서 길게 잎을 두 장 낸 후 그 사이로 가녀린 꽃대를 한 뼘 정도 올 린 후 6장의 흰 꽃잎을 가지런히 피운다. 위에서 쳐다보면 꼭 별모양 같다. 꽃잎 안쪽은 흰색, 바깥쪽은 연분홍 줄무늬가 있다. 찬란한 볕이 있어야 꽃잎을 벌리는 산자고는 여리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숲 안에는 점점이 노란색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가 있다. 꽃의 생김새는 산수유와 닮았지만 너덜너덜한 줄기의 산수유와는 달리 매끈한 줄기를 지녔다. 잔가지나 잎에서 알싸한 생강향이 나서 꽃차로 마시기도 하며 일찍 겨울잠에서 깬 곤충이나 동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우리의 소중한 자생 식물이다. 지난해 마른 잎을 여태 달고 있는 감태나무도 곧 싹을 틔워 낼 것이며 하루하루 볼록해져가는 벚나무 가지 끝에 달린 꽃망울도 점점 커지고 있다.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숲이나 생존을 위해 이른 봄 햇살이 머무는 순간 서둘러 꽃과 잎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속절없이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줄어들었고 집 밖에선 타인의 눈치가 찬바람보다 매섭고 무서웠다. 인간들의 희노애락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 할 일을 해내고 있는 상림을 보며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성큼 깊어진 봄, 상림에서 치열하게 피워낸 봄꽃에 눈 맞추며 나만의 생존전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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