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한 채 사야겠다. 옵션을 잘 보고 아내와 나에게 맞는 집을 사려고 한다. 도시에서 아파트 팔고 그 돈으로 지리산 골짝에 집을 짓고 이십년째 살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을 팔아서 다시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 지난 11월 덕장에서 한창 곶감을 깎고 있는데 농사용 전기가 나갔다. 전기 나가고 감박피기가 작동을 멈추니 올스톱이다. 놉을 셋이나 쓰고 있는데 말이다. 집에 전기, 수도같은 것이 고장이 나면 세상에서 제일가는 기계치인 나는 정말 당황스럽다. 아파트에 살았을 때는 관리사무소에서 다 알아서 해주었지만 일반주택 그것도 지리산 골짝 마을 산 아래 첫 집에 사는 나는 내가 관리소장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즉시 전기 공사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몇 가지 물어보고는 전신주 휴즈가 나간 것이니 한전으로 전화를 하라며 친절하게 전화번호도 알려준다.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하니 고맙게도 직원 두 명이 지체없이 출동해서 전신주에 올라가 해결을 해주었다.(아파트에 살면 내가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구정을 앞두고 오늘 곶감 택배 포장하느라 바빠 똥도 못 누고 있는데 가정용 전기가 나갔다. 전기가 나가니 냉장고, 난방 보일러 등등 모든 게 스톱이다. 현관 신발장 안에 숨어있는 두꺼비집을 열고 떨어진 차단기를 올렸더니 일초도 안 되어 다시 떨어진다. 두 번 세 번 다시 올려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번 농사용 전기 나갔을 때가 생각나 이번에는 바로 한전으로 전화를 했더니 민간 전기업체에 연락을 하란다. 실내에 누전이 되어 차단기가 떨어지는 것이니 한전에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기업체에 연락했더니 고맙게도 읍에서 기술자 세 명이 달려와 누전의 원인을 찾아주었다. 심야전기 온수통에 누수가 생겨 누전으로 차단기가 떨어진 것이다. 온수통은 보일러 업체에서 수리를 하던지 교체를 하던지 하면 될 것이다. 다른 실내 전기는 모두 사용이 가능하도록 조치가 되었다.(아파트에 살면 내가 이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보일러 업체에 연락은 했지만 해결이 될 때까지 따뜻한 물을 못 쓰게 되니 설거지 하는데 손이 시리다. 샤워도 못하고 아내가 데워준 물 한 냄비로 얼굴은 씻었는데 머리 감을 물은 없다. 그렇다고 머리를 안 감을 수가 없어 그냥 찬 물로 머리를 감는데 이게 그냥 찬물이 아니고 얼음물이다.(아파트에 살면 내가 얼음물로 머리를 감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파트를 한 채 분양 받기로 결심하고 이런 저런 옵션을 검토해보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옵션을 갖춘 집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옵션은 봄 여름 덩굴장미가 피는 정원이 있을 것, 개와 고양이가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 앞으로 강이 보이고 뒤에는 산이 있을 것, 그리고 봄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사소한 것들인데, 이런 옵션을 갖춘 아파트가 없는 것 같다. 나는 다른 건 다 양보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옵션이 있는데, 봄에 뻐꾸기 울음소리는 꼭 들어야한다. 유감스럽지만 마지막 옵션을 포기할 수 없어 아파트는 없던 일로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산골짝집에 그냥 눌러앉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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