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머리에 흰 소의 해를 마중하듯 서설(瑞雪)이 내렸다. 흰색은 예로부터 신성, 순결 등 깨끗함을 표현하는 색이다. 우리 민족이 유달리 흰색을 좋아해서인지 흰 백(白)자가 들어간 산 이름이 많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비롯한 태백산, 소백산과 한라산에는 백록담이 있다. 우리 고장에도 북쪽 백전면에 백운산이 있고 남쪽 마천면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백운산이 있으며 중심지인 읍에는 백암산 그리고 동쪽 안의면에 기백산이 있다. 백암산을 제외하고는 천 고지가 넘는 준봉들이다. 두 개의 국립공원에는 북쪽 끝에는 덕유산이, 남쪽 끝에는 지리산이 있어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 눈 덮인 모습은 겨울 경치가 백미(白眉)인 고장이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조건이 맞아 서상면에 자리 잡은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에서 흰 한우가 증식되고 있어 흰 한우가 가장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깨끗한 흰색이 많은 고장이니 새해 서기(瑞氣)가 제일 먼저 비춰지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옛 속담에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소 잡아 먹은 자리는 없다’고 한다. 소는 몸통은 물론 가죽과 털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소는 살아선 뚝심으로 농부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삶을 마감할 때는 평생을 속박했던 코뚜레 하나를 남기고 떠난다.
요즈음은 소가 담당했던 논밭갈이나 운반수단인 소달구지를 경운기, 트랙터, 자동차 등 기계화로 대체되고 있어 소코뚜레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덜 수 있어 참 다행한 일이라 생각된다. 소코뚜레를 액막이용이나 사업번창과 행운을 비는 부적으로 벽에 걸어두는걸 보면 사람들의 염치없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코뚜레를 보면서 소의 희생에 대해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으로 소를 위해 위로의 기도를 해야 복을 가져다 줄 것이 아닌가. 소에게만 코뚜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힘이 약해지면 강한 나라에 코가 꿰어 핍박을 받게 된다. 지난 역사에 청나라와 일본에게 세자나 왕자가 볼모로 잡히고 백성은 노비나 노역장 전쟁터에 끌려가기도 하고 자원과 생산품은 조공으로 받쳐지거나 착취당하는 큰 희생을 강요받는 치욕적인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의 코 꿰임은 위법부당한 행위로 약점이 잡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 또 다른 부정한 행위를 강요받는 위험 속에 빠지게 된다. 준법생활화만이 모두가 안전하고 깨끗한 신뢰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몇 년 째 새해 벽두에는 청렴도 향상을 위해 다짐하는 행사를 해 오고 있지만 청렴도는 아직도 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든 환경이 깨끗한 고장이니 이제 우리 마음만 깨끗하게 가지면 된다. 흰 소의 해를 맞았으니 욕심 좀 내려놓고 모든 일을 당당하게 처리하면 올해가 청정한 함양만들기 원년이 될 것이다.
이중섭 화가의 흰 소와 황소그림에는 코뚜레가 없다. 자유로운 모습에서 해방감과 역동적인 야성이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코뚜레 없는 세상이 행복세상임을 일깨워 주는듯한 그림들이다.코 꿰임도 다양해져 코로나바이러스에 코가 꿰어 평온한 일상을 빼앗겨 버렸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천리 먼 것 같아 걱정이지만 우보천리라고 했으니 조심조심 가다보면 목적지인 활력 넘치는 일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 안팎이 모두 어둡고 어수선하다. 이런 때일수록 코 꿰임을 경계하여 코뚜레 없는 세상을 지켜내야 한다. 모두가 어려운 설맞이다. 빈 마구에 소 들어 가듯 모든 가정에 희망의 흰 소 한 마리씩 들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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