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도 거의 눈이 내리지 않고 기온도 그다지 내려가지 않아 이곳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했던 모 목사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말에 공감이 되지만 백 프로는 아니다. 왜 그러냐 하면 가끔은 심하게 추울 때도 있으니까. 재작년 겨울, 집 근처 사거리 신호등을 지나가다 진기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늘진 곳에 한데 모여 구구구 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고 있던 비둘기 떼가 어느새 날개를 펴고 위로 오르더니 한 사무실 창가에 나란히 앉는 것이다. 아빠 비둘기, 엄마 비둘기, 오빠 비둘기, 동생 비둘기 등 순서대로 다정한 가족을 연상케 하며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들은 따뜻한 햇볕을 찾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추운 겨울 조금이라도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지혜롭게 행동하는 비둘기들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이 주 전까지만 해도 이 층에 물이 얼어서 물관에 열선을 부착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며칠 전부터 햇볕이 많이 들고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아침나절에도 창문을 통해 햇볕이 살며시 인사하며 기분을 좋게 했다. 햇볕, 햇살 하면 나는 신영복 선생님이 생각난다. 몇 년 전 한 페이스북 친구의 게시물을 통해 그의 저서 『담론』의 극히 일부분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분의 글은 나긋나긋하면서도 막힘이 없고 한 편의 시처럼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바로 『담론』을 주문했었다. 그는 성공회 대학교 석좌교수였으며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그간의 강의록을 한데 모아 정리한 것이 바로 『담론』이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고전에서 세계 인식을 읽어내어 내 삶을 돌아보고 인간을 이해하는 내용을 다룬 서른여섯 개의 챕터로 쓰여 있다. 그의 문체는 너무나 부드러워 마치 잔잔한 강물 같았고 그 메시지들은 내 마음을 출렁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러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와 꽂힌 것은 그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20년간 교도소 생활을 했는데 겨울 독방에서 길어야 두 시간 비치고 최대로 커야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통해 살아있음의 절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극한의 상황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며 햇볕은 또한 살아가는 이유이고 생명 그 자체였다고 하니 사람에 따라서는 이 햇볕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며 의미 있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나도 내 개인 저서 『말하기 능력이 스펙이다』 241쪽에서 243쪽에 ‘그것은 희망의 빛’이라는 자작시를 통해 햇살은 내게 애인과 종교와도 같이 커다란 힘으로 다가와 희망을 준다고 말한 바가 있다. 국어사전을 보면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이고 햇살은 해에서 나오는 빛의 줄기 또는 그 기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햇볕은 좀 더 큰 범위의 말이고 햇살은 그 일부를 지칭하지만 결국 해를 두고 하는 말이니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지구에서 그분과 내가 하나의 사물을 통해 같은 마음으로 공감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다. 비록 그분은 떠났지만 별이 되어 나의 가슴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가 그리울 때면 가슴 속의 별을 되새기며 그의 책을 꺼내어 본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모습도 보이고 산에 들에 작은 풀꽃도 눈에 띄며 파릇한 새싹이 기지개를 켜고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말 봄이다. 살다 보면 어두운 터널과 밤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고 구름이 지나면 태양이 빛나는 법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겨울날 비둘기의 지혜와 처세를 생각해 보자. 오랜 교도소 생활에서도 한 줌 햇살 때문에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던 신영복 선생님을 그려보자.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 한 줌의 햇살! 태어나지 않았다면 결코 받지 못할 선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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