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시험 점수의 분포는 보통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를 따른다. 왼쪽 그림처럼 평균 점수를 얻은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평균값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학생 수가 감소하는 분포로 ‘랜덤 분포(random distribution)’라고도 한다. 이러한 분포를 갖는 사례들은 매우 많다. 사람들의 키의 분포도 그러하다. 우리의 키는 성인을 기준으로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략 1.5미터와 2.2 미터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방안을 채우고 있는 공기분자들의 속도도 제각기인데 그 분포 역시 평균값을 중심으로 정규분포 곡선을 따른다. 그러나 전혀 다른 분포도 가능하다. 직장인의 연봉을 예로 들어보자. 오른쪽 그림에서 수평축을 연봉 액수, 수직축을 그 연봉을 받는 직장인의 수라고 했을 때, 그림처럼 대다수 직장인이 소액의 연봉을 받는 반면 매우 고액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들도 적지만 존재한다. 이 분포는 ‘멱급수 분포(power-law distribution)’라 하며 앞에서 언급한 정규분포와는 매우 다르다. 만일 사람의 키가 정규분포가 아닌 멱급수 분포를 따른다면 매우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다. 대부분 성인들은 평균 키를 갖겠지만 10미터, 20미터, 심지어는 100미터의 키를 갖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멱급수 분포를 보이는 사례들도 대단히 많다. 지진은 보통 리히터 규모를 기준으로 강도를 정하는데 역대의 지진의 강도와 그에 해당하는 지진의 빈도수를 그려보면 정확히 멱급수 분포가 된다. 작은 규모의 지진의 빈도는 매우 많지만 간간이 매우 큰 규모의 지진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전쟁도 전쟁 규모와 그 빈도의 관계 역시 같은 결과가 나온다. 지구의 역사에서 발생한 생명 대멸종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도시의 인구와 그 인구를 가진 도시의 수의 관계도 그러하다. 주가 지수의 경우도 소폭의 등락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주는 큰 규모의 등락도 가끔 일어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빈도 분포가 갈리게 되는가? 구성 요소들의 상호적 관계의 특성에 따라 다른 분포가 나오게 된다. 방안에 가득 찬 기체분자들은 서로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속력은 일정 범위 안에서 랜덤하게 주어지게 되므로 속력 분포는 정규분포 곡선으로 나타난다. 사람의 키나 시험점수의 분포도 비슷한 사례이다. 반면 생태계 생물 종들은 여러 종들 사이에, 그리고 생물과 자연환경 사이에 매우 강하고 복잡한 상호 관계를 나타낸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전 칼럼에서 언급한 ‘복잡계’라 하며 멸종 규모와 빈도의 관계는 멱급수 분포로 주어진다. 생태계와 같은 복잡계에서는 한 종의 변화가 다른 종들에 큰 영향을 미치며 때에 따라서는 작은 변화가 전체를 붕괴시키는 ‘나비효과’가 일어나기도 한다. 생물 종의 멸종 강도와 빈도의 관계가 멱급수 분포로 주어지는 이유이다. 주식시장의 예상치 못한 대규모의 급락도 투자자들 간의 복잡계적 상호 관계에 따라 일어나는 큰 파국이라 할 수 있다. 기존의 과학은 위에서 열거한 많은 복잡계의 사례들을 한 원리나 규칙으로 기술할 수 없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미시적 원인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생물 종의 대량 멸종은 지구 환경의 갑작스런 변화 때문이며 주가지수의 급락은 무언가 정치 경제적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이들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은 복잡계라는 특성을 가지며 멱급수 법칙이란 공통적 원리를 따른다는 점에서 동일한 부류에 속하는 현상이다. 이제 많은 세상사들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학적 방법이 등장한 것으로 시대적 과제인 자연과학과 여타 분야들과의 통섭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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