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시드는 풀과 같습니다. 아침 안개요, 풀잎의 아침 이슬입니다. 성경은 인생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고 합니다. 첨단 과학시대 오늘의 인생은 한 줌의 재가 됩니다. 사람은 한번 오면 한번 가는 것이 정해진 진리입니다.
지난 코로나 해 12월30일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 함양중학교 은사 박홍관 선생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94세의 장수셨으나 오늘 같은 100수 장수시대 그래도 한정없이 아쉽게 서럽게 떠나셨습니다. 중학 1학년부터 3년간 국어를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국어 시험에 고시조 한 수 외어 쓰는 문제를 내셨습니다. 당시 암기력이 좋던 나는 이현보<1467-1555>의 고시조 한수를 잘 외어 썼습니다. “굽어는 천심녹수千尋綠水돌아보니 만첩萬疊청산 십장十丈 홍진洪塵이 엇매나 가렸는고 江湖에 월백月白하거든 더욱 무심하여라” 한자어가 많은 이 어려운 고시조를 외어 쓴 나의 99점 시험지를 4개 반에 직접 가지고 가시어 오동춘 제자 국어 점수를 칭찬해 주신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중하교 2학년 때 일기 쓰기 지도를 잘 해 주시어 그 때부터 여든이 많이 넘어간 지금까지 70년간 나는 꼬박꼬박 일기를 쓰며 살아갑니다. 이처럼 내게 국어공부를 잘 시켜 주신 은혜로 나는 지금 시단 말석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늘 고마운 박홍관 선생님 그리움 속에 50여년 뵙지 못하다가 중학동창 함양읍내 하약국 하두현 친구로부터 소식을 알게 되어 참 기뻤습니다. 한중환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백질갑 교감선생님, 이상복 담임선생님 그밖에 영어 역사 수학 선생님 등 거의 다 돌아 가셨습니다.
장수하시며 살아 계신 박홍관 선생님 2014년 5월 16일 경남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대남교회 앞에 있는 자택으로 아우와 함께 찾아 뵈었습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마주 앉은 내게 “내가 자네보다 더 젊네” 말씀하시는 박 선생님은 건장해 보였습니다. 사모님은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취미로 수석이 벗이었습니다. 2층 수석전시실도 보여 주셨습니다. 2년 뒤에 나는 스승의 날 즈음에 박홍관 은사님께 감사 드리는 감사패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박선생님과 같은 면 출신 제자 유성기 교수와 내가 어느 음식점에 두 번 모시면서 함양중학 추억담을 많이 들었습니다. 더 모시려 했으나 병원에 자주 가시고 병원에라도 뵈러 가려 했으나 코로나로 병원 방문도 어려우니 내가 연락 할 때 만나자 하셨습니다. 나와 유성기 두 제자에게 이천 도자기도 선물해 주셨습니다.인자하신 박홍관 선생님 주신다던 연락 전화 못 주시고 새해를 이틀 앞두고 하늘나라 가십니까 “나와 만나세” 전화 연락 기다렸으나 아들로부터 별세소식 전해 왔습니다. 장수시대 더 사셔야 하는데 박선생님 마음 깊이 안타깝고 허전합니다. 코로나에 막혀 장례식장도 못간 무례를 용서하시길 빕니다. 조용히 가족장으로 논개묘가 있는 서상 선산으로 유택 정하셨으니 부활 소망으로 우리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아무 근심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히 쉬시길 빕니다.2021. 1. 12. 제자 오동춘 드림오동춘마천출신 함양중학교 8회 졸업문학박사, 시조시인 전 연세대 사회교육원 교수짚신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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