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영상 중 매우 흥미로운 게 하나 있다. “베트남 하노이 시 교통에서의 자기조직화”라는 난해한 제목의 영상인데 실제로 보면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만이 이어진다. 하노이의 한 사거리의 모습인데 모든 방향에서 자동차, 보행인, 오토바이, 자전거, 수레까지 밀려들어오고 있고 직진, 좌회전, 우회전 등 제각기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특별한 점은 이 사거리에 신호등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으레 너무 혼잡스러워 도로 전체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 전체적인 흐름이 매우 매끄럽다. 자동차도, 보행자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수레도 한 번의 후진도 없이 물결처럼 사거리를 통과해 간다. 이런 복잡함 속에서 매끄러운 흐름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리켜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이라 부른 것이다. 어떤 통제나 계획 없이 자체적으로 ‘질서’가 조직되었다는 말이다. 이 경우 자기조직화란 모두가 매끄럽게 사거리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많이 있다. 수많은 새들이 가끔씩 멋진 형태의 장관을 연출하며 무리지어 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새 무리 전체를 통제하는 우두머리 새가 있고 이 새의 지휘에 따라 모든 새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각각의 새들은 매우 간단한 규칙만을 지키며 비행할 뿐이다. 그 규칙은 대략 옆 동료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너무 혼잡한 곳은 피하는 정도이다. 전체 무리의 비행 형태를 관찰하며 자신의 비행경로를 정하는 새는 없다. 그럼에도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따라 만들어질 것 같은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사회적 곤충인 개미, 벌 등도 먹이를 찾거나 적과 싸우거나 혹은 집을 지을 때 누군가 대장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인접한 동료들과 국소적(local)으로 소통하면서 일을 할 뿐이다. 이들 사례들은 중심부의 통제가 전혀 없이 각각의 국소적 상호작용만으로 자발적인 질서가 형성이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매우 혼잡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서를 갖춘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노이 사거리 교통에서 만일 신호등이 있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다면 이 또한 매우 질서 있는 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 질서는 자율적인 판단과 상호소통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혹 신호등이 고장이라도 난다면 가지고 있던 질서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구성원들의 자율적 소통과 판단으로 이루어진 이 체계를 현대과학에서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라 부른다. 이 개념은 이미 필자의 이전 칼럼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바로 생명이 그런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중심부의 획일적인 통제로 전체가 움직임으로써 단순한 질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가진 조직들이 상호작용하며 매우 복잡한 ‘살아있음’이라는 질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복잡계 과학의 연구에 의하면 이와 같은 복잡한 질서가 외부 교란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을 갖는다고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달려온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돌이켜본다면 위의 사례들과 자연스럽게 연관성을 갖는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이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며 나타나는 획일적인 사회는 매우 단순하고 질서정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재자의 그릇된 판단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결국 파국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반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그야말로 민주주의 사회는 다소 느리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그릇된 정책도 충분히 수정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질서는 지속력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든 힘을 다해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또 지켜야 하는 과학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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