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야! 속만 썩이던 경자년 잘 가라카고 오는 신축년이나 잘 반겨 주라” 지인과 카톡을 하던 중 날아온 이 멘트에 몇 초간 어리둥절했는데 뒤이어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욕 같은데 욕이 아닌, 귀를 유혹하는 재미있는 문장이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힘든 한 해를 보낸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이 은근 비치는 웃픈 이야기이다. 올해는 신축년 소띠의 해이다. 소는 큰 덩치로 논과 밭을 가는 힘든 일을 묵묵히 행하는 모습에서 우직함과 참을성의 대명사라는 칭찬을 받는다. 또 시골의 한 들녘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유와 평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황소고집이나 소귀에 경 읽기 같은 말을 보면 어리석거나 고집이 세다는 이미지도 있다. 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며 우경에 사용된 것은 지증왕 때라는 기록이 있다. 농경 중심의 사회였던 우리의 일상이 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소에 관련된 속담도 많을 것인데, 가장 많이 알려진 속담은 ‘소귀에 경 읽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처럼 일한다,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한다.’ 정도이다. 그런데 소와 관련된 속담 자료를 찾아보니 쉰 가지가 훨씬 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 중에서 내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라는 속담이다. 소의 소중함과 유용함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아주 재치 있는 속담이라 빙그레 미소를 짓게 한다. 나는 소와 인연이 많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항상 소를 보며 자랐다. 옛날 우리 집에도 소가 있었다. 아버지가 밭일하거나 논일을 할 때 소는 가장 우선으로 필요했던 존재였다. 어쩌다 새끼가 태어났을 때는 애지중지 우리 가족 모두의 희망이었다. 팔아서 빚을 갚거나 오빠의 고등학교 등록금을 내는 데 사용하는 등 아주 중요한 일에 요긴하게 쓰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집에서 키우던 덩치가 아주 큰 소가 있었는데 아버지의 치료비로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 주었다. 소가 중요하다 보니 우리 형제자매는 조금씩 소 꼴을 베어야 했는데 내가 가장 열성적으로 꼴을 베었다. 동네 다른 남자아이들은 소를 몰고 멀리 나가서 꼴을 먹이곤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따라 같이 가서 풀을 베거나 앞집 언니랑 망태를 메고 나가 꼴을 베 오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모내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역시 앞집 언니가 꼴을 베러 가자고 기별을 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망태를 메고 앞집 언니랑 꼴을 베러 갔다. 그날따라 열심히 꼴을 베어서 망태에 채워 넣고 나니 힘이 들고 허기가 졌다. 잠시 쉬면서 보는데 눈앞에 찔레나무 덩굴이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찔레순들이 어린 나를 유혹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찔레순을 몇 개 꺾어서 껍질을 까고 입에 넣었다. 달짝지근한 것이 참말로 맛이 좋았다. 이제 몇 개만 더 꺾고 말아야지 생각하고는 손을 조금 더 깊이 넣어서 하나, 둘 세는데 갑자기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따끔했다. 아차 하는 순간 손을 빼고 보니 손가락이 점점 붙기 시작했다. 뱀한테 물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치료를 대충 받고 일주일 동안 오로지 집에만 죽은 듯이 박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만 보더라고 소는 정말 우리에게 유용한 존재이다. 소는 농사짓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재산으로, 의복으로, 건강을 위한 식자재로 정말 하나 버릴 것 없이 유용하게 활용된다는 것이다. 하나 더 덧붙이면 나처럼 시골에서 자란 많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추억까지도 제공해준다. 그러니 오죽하면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것이 없다’는 속담이 생겨났겠는가. 신축년 올해는 우리도 하품밖에 버릴 것 없이 소중한 소처럼 언제 어디서나 존재감 있고 당당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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