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적 개념으로 ‘점이대(ecotone)’라는 게 있다. 평원과 삼림이 만나는 부분처럼 두 서로 다른 생태계가 만나는 경계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점이대는 단순한 경계나 가장자리가 아니다. 둘 이상의 생태계가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인접 생태계에는 없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점이대의 중요한 점은 식물이나 동물 종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생태학 교과서에 의하면 삼림이나 들판의 중심부보다 삼림-들판 경계에 더 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 현상을 ‘가장자리 효과(edge effect)’라 부른다. 결국 여러 생태계의 조건들이 혼합되어 더 많은 종류의 동식물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점이대는 우리 삶의 주변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 하나의 벽채로 바깥과 따뜻한 주택 내부 사이를 나누기보다 온실과 같은 일정 면적의 완충공간을 만들어 단열 효과를 높이고 그 안에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산소도 공급할 수 있다. 내부 공간은 감소하지만 그만큼 이득도 있는 셈이다. 지구 생태계의 여러 다양한 점이대가운데 매우 중요한 지역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갯벌이다. 전체 지구 생태계의 0.3%의 면적에 불과하지만 그 생태적 가치가 숲의 10배에 달하는 갯벌은 바다와 육지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짠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매우 다양하고 풍성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지구의 허파’로 불린다. 특히 우리나라의 갯벌은 그 넓이나 생물 다양성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해 왔다. 그런데 지난 30년 간 산업단지나 농지조성을 위해 전체 갯벌의 3분의 1 가량이 사라졌다. 특히 노태우 정부가 전북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공약하고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그 규모에서도 엄청나다. 33km가 넘는 방조제를 쌓아 서울시 면적의 2/3에 가까운 매립지와 호수를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4개 종단 성직자들이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장장 305km의 길에서 65일 동안 삼보일배를 벌였다. 성직자들의 목숨을 건 운동에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여 반대운동을 벌였으나 결국 방조제는 완공되었다. 방조제가 완성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갯벌과 함께 많은 생물 종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방조제 안쪽 조성된 호수가 썩어 해수유통이 필요하게 되었고 매립지의 용도도 기업이나 농지조성에 실패하니 명품 스마트 도시를 만들고 2023년에 세계 잼버리 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이 사업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두고두고 역사적 오명으로 남게 될 것이다. 유명한 점이대는 우리 고장 함양에도 있다. 1천 년 전 함양 태수로 있던 최치원 선생이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동양 최대의 인공 숲이며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상림’이다. 이 숲은 오랜 기간 아름다운 4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함양군민들에게 안락한 휴식처 역할을 해왔다. 보통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 높은 강둑을 세운다. 이는 강과 옆의 땅의 경계를 나누어 서로 다른 생태계가 완전히 차단되도록 한다. 반면 상림은 두 생태계 사이에 위치하며 범람한 강물 속의 미네랄을 충분히 흡수하고 영양분을 공급받음으로써 두 생태계를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다양한 종들이 깃들어 살 수 있게 되었다. 함양은 매우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이며 지금도 산삼, 곶감 등의 농산물을 자랑거리로 홍보하고 있다. 접근이 힘든 오지였던 이 곳에 고속도로가 개통되며 남부지역 영호남을 잇는 요충지로서도 변모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점이대로서의 상림의 생태학적 가치를 강조하고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천 년의 시간에 걸쳐 가장 과학적이고 생태적인 지혜가 숨 쉬고 있는 숲 상림이 늘 우리 옆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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