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체는 물, 단백질 지방등 유. 무기물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현대과학은 조직의 최소 단위인 세포와 그 속의 원형질, 원형질속의 핵과 핵 속의 인, DNA성분까지 분석해낸다. 하지만 이 구성요소들을 시험관에 모아 아무리 합성해도 생명체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공장에서 볍씨를 생산했다고 해서 그 볍씨를 땅에 묻었을 경우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트지는 않는다. 첨단과학을 총동원하여 만든 로봇에 피가 돌게 하고, 숨을 쉬게 하고, 생각을 하게하여 로봇 스스로 위대한 인문학을 쓰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생명체란 물질의 합성만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닌 창조주의 영역인 것이다. 인체의 주인은 눈으로 보이는 육체인 것 같지만 주요골격과 오장육부는 정신의 명을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말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이 있다. 이는 인체의 주인은 마음이라는 것이며 그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모든 유기체는 죽은 후 미생물에 의해 분해과정을 거처 언젠가 없어지지만 정신은 분해 대상인 물질이 아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종교에서는 주인인 영혼이 헌 집인 육체를 빠져나가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1969년 07.16일 아폴로호로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다. 그날 TV앞에서 지구촌의 모두는 이제 우주가 과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고 환호했다. 늘 그래왔던 인간의 교만이 그날도 있었다.
1초에 지구의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게 빛의 속도다.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데는 빛의 속도로 1초 조금 더(약1.3초) 걸리며 태양까지도 8분이면 된다는 계산이다. 놀라지 말라. 우주에는 현재까지 발견한 별 중에서만도 빛의 속도로 가도 200억 광년이 걸리는 별도 있다고 한다. 태양 역시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계 약 천억 개의 별 중 하나이고 이 은하계 역시 전체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조그만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대과학은 이제 겨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 갔다 온 걸음마도 못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오만에 빠지게 한다. 물질문명에 주인자리를 빼앗긴 정신문화는 현대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고민을 안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회원국 중 자살율이 제일 높다. 우리의 영혼은 영혼의 주체가 선택하는 마음의 행로에 따라 수없이 생과 사를 넘나든다. 이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간발의 차이이자 하늘과 땅의 차이라 할 것이다.
크게 다른 두 사람의 자서전이 있다. “내 생에 행복했던 날은 단 일주일 밖에 없었다”고 쓴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과 “내 생에 행복하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3중장애인 헬렌켈러의 자서전이 그것이다.
우리는 과학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왜 살아야하는지, 어떤 삶이 영혼을 움직이는 감동의 삶인지, 그래서 고난 앞에 더욱 강해질 수 있는지 등의 해답은 결코 과학에서 구할 수 없다. 천하통일도 상대의 마음을 얻는데서 비롯됨을 고전은 가르치고 있다. 고양된 정신이 주인자리를 찾아 바른 행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국가나 가정에서도 자본만을 찾아가는 인간이 아닌 참 행복을 찾아갈 줄 아는 인간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과 서로의 갈등으로 가득 찬 지금 우리사회의 분위기에서는 나도 있고 우리도 있다는 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정신문화 자부심이 높은 프랑스처럼 초등학교에서의 철학교육과 대입자격시험에 철학을 필수과목으로 했으면 싶은 게 평소 필자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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