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함양의 시골은 삶이 팍팍하던 때다. 함양군 백전면에서 3남3녀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매일 땟거리 걱정에 고민이 깊었다. 어머니는 비싼 쌀 대신 밀가루로 칼국수, 수제비를 끓여 가족의 끼니를 때웠다. 박재천(50)씨가 칼국수집을 하게 된 사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가난하던 시절 너무 많이 먹던 음식이라 성장 후에는 칼국수, 수제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아내가 집에서 끓여준 칼국수를 먹고 옛날생각이 나던 박씨. 어머니가 칼국수를 끓여 자식에게 먹일 때 어떤 맘이었을까, 그 마음으로 장사를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여 박재천씨는 아내 이상은씨와 2009년4월30일 ‘박서방칼국수’를 개업했다. 요리를 배운 적도 없이 ‘집에서 해먹던 대로 하면 되겠지’ 싶은 마음으로 남원시 인월면에서 무작정 개업부터 했다. 문을 열어 놔도 하루에 찾는 이는 고작 두세명.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박씨는 그때부터 맛을 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넣어보고 재료비율을 달리해 가며 맛을 찾고 연구했다. 아내와 함께 유명한 칼국수집은 무조건 찾아가서 먹어봤다. 조미료 없이 시원한 해물칼국수 국물맛을 내기 위해 시행착오도 여러 번, ‘박서방칼국수’에만 존재하는 육수레시피가 완성됐다. “저는 소금간을 하지 않아요, 육수에 넣은 재료에서 우러나온 맛으로만 간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서 만든 모든 음식의 간이 일정하죠” 육수에 들어간다는 다시마, 멸치 등 8가지 비밀재료가 “아들에게도 못 가르쳐 준다”는 비법이다. 다시물이 중요하다보니 재료도 최상급을 쓴다. 두툼한 완도산 다시마에, 하루 한 박스씩 쓰는 멸치도 최고 품질만 고집한다. “멸치값이 엄청 올랐던 적이 있죠. 그때 조금 싼 걸로 바꿀까 하는 유혹이 오더라구요. 한 단계만 낮춰도 가격 차가 많이 났죠. 그렇지만 단골 얼굴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어요. 손님과의 약속을 저버릴 순 없잖아요. 같은 날 같은 시간 한결 같이 문을 여는 것도 신뢰의 문제죠” 박씨가 가게에 들어서는 시간은 오전7시30분. 밀가루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 상온에서 온도를 맞추고 숙성된 김치양념으로 배추겉절이를 담근다. 신선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바지락도 매일매일 공수해 준비한다. “처음엔 재료가 아까워서 바지락도 조금만 넣었는데 손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릴 때를 생각하며 배불리 푸짐하게 대접하고 싶어서 재료도 듬뿍, 칼국수 양도 많이 드리려고 해요” 주인의 그 마음을 알기나 하듯 손님들은 “보약 먹은 기분”이라며 잘 먹었다 인사하고 “엄마 맛이 난다”며 부모님 묘에 놓겠다고 사가는 손님도 있었다. 장날 때마다 오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맛본 음식이라며 상에 올린다고도 했다. 대구, 창원에서 온 손님이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며 부모님께 드리려 포장을 해가기도 했다. “면이 불면 맛이 없잖아요. 그래서 포장을 안했죠. 그랬더니 손님들이 냄비를 들고 와서 사 가셨어요. 너무 죄송해서 포장용기를 구입했어요” 주인의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서방칼국수의 깍두기는 무 모양이 얇은 네모꼴. 이가 좋지 않은 어르신이 먹기 좋도록 하기 위함이다. 노란빛이 나는 반죽은 치자를 넣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염증을 가라앉히는데 돕고 초록빛 나는 반죽은 부추를 넣어 밀가루음식의 찬 기운을 중화시킨다. 이상은씨는 “우리는 한 그릇 팔아서 얼마를 남길까가 중요하지 않아요. 손님들이 드시고 든든하게 잘 먹었다. 먹고 나니 기분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우리에겐 그게 제일 중요하죠” 칼국수, 수제비는 서민음식이다.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막상 집에서 해먹기엔 번거로움이 많은 음식. 사 먹는 서민음식에 마음을 담아 파는 박서방칼국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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