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년 전 김종직이 올랐던 지리산 등산길이 일부 개방된다고 한다. 함양 군수였던 김종직 일행이 올랐던 지리산 등산길은 그가 남긴 <유두류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십수년 전부터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꾼들이 <유두류록> 탐구팀을 만들어 기록에 등장하는 길과 지명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답사를 한 결과 옛 지명과 잊혀진 길을 거의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금년 말이나 내년 초에는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유두류록> 탐방로를 일부 개방하게 된다고 한다. 김종직 일행은 엄천강 운서리에서 산길을 잡아 노장대동 마을터-환희대-함양독바위-신열암터-고열암터-상내봉삼거리-새봉-청이당터-영랑대-중봉-천왕봉에 올랐다. 이 코스는 그 당시 함양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가장 잘 알려진 길이었는데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유두류록>에 나오는 이 길이 인위적으로 막히고 세월에 묻히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길이었다. 내가 20년 쯤 전 <유두류록>의 출발점인 휴천 운서리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할 당시 마을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일제시대 때는 우리 마을 뒷길로 천왕봉까지 바로 올라갔는데 지금은 길이 없어 졌어~” 라고 하셨다. 당시 살아 계셨던 명조 어르신은 젊었을 때 마을 뒷길로 하봉을 거쳐 천왕봉에 올라간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나는 그 길이 <유두류록>에 나오는 육백년 어쩌면 천년 이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산길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운서마을에서 천왕봉까지 곧장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길은 어디나 있는 법이지...) 하고 아무 생각없이 듣고 넘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휴천 운서리는 오래전부터 지리산 상봉으로 오르는 널리 알려진 들머리였던 것이다. 다만 세상이 바뀌어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등산로가 조정 및 제한되는 바람에 그 길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묻혀버릴 것 같았던 옛길이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꾼들의 노력에 의해 다시 고증되었는데 고맙게도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환경부에 역사적인 옛길을 복원하고 개방해달라는 민원까지 넣었다. 그리고 더 고맙게도 그 민원의 일부가 받아들여져 <유두류록>탐방로가 비록 전 구간은 아니지만 일부 다시 열릴 것이라고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연말이나 내년 초에 최종 결정이 나면 함양군은 개방되는 구간을 유두류록 탐방로로 정비한다고 한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함양군에서 유두류록 탐방로의 들머리를 기록에 나오는 엄천 화암(운서리 일대)가 아닌 벽송사로 하는 기획안(?)을 만들었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맞았다고 한다. 김종직이 가보지도 않은 벽송사가 여기서 왜 나오는지 나는 모르겠지만(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한다) 다시는 역사를 무시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정으로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두류록 탐방로 개방 소식과 때를 맞춰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류정자 지음>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550년 전 김종직이 남긴 <유두류록>을 읽고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탐구팀을 만들어 십수년간 답사한 기록을 사진과 함께 기록했다. <유두류록>이 지리산의 구약이라면 <김종직의 유두류록 탐구>는 지리산의 신약이다. 나는 <유두류록 탐방로>를 정비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함양의 행정에게 지리산 구약과 신약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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