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에는 혼자서 쉬엄쉬엄 곶감을 깎았다. 큰비가 온다고 해서 그 날 하루는 놉을 쓰지 않고 전날 깎다 남은 감을 되는대로 깎고 있는데 매번 빗나가던 구라청 예보가 이번에는 적중해서 어마어마하게 큰 비가 쏟아졌다. 11월에 내린 비로는 113년 만에 가장 큰 비였다는데 비만 쏟아진 게 아니라 벼락까지 내리쳤다. 내륙지역 천둥번개 예보도 있었지만 구라청 예보라 설마했다가 혼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 소설이 며칠 안 남았는데 눈 대신 비가 이렇게 심하게 올 줄이야... 덕장에서 느긋하게 감을 깎던 나는 앗차~ 하고는 빛의 속도로 보일러 실로 달려갔다. 우리 집은 산 아래 첫 집이라 벼락이 치면 심야전기 보일러가 바로 고장이 난다. 우리집에 있는 보일러는 오래 전에 제조업체가 문을 닫는 바람에 고장이 나면 수리가 어렵기에 나는 비만 오면 미리 보일러 전원을 빼 놓는데 11월에 벼락이 칠 줄이야... 예전에는 컴퓨터도 자주 먹통이 되었는데 광케이블로 바꾸고 나서는 괜찮다. 곶감 말리는 일이 해를 거듭할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불과 십년 전만해도 감을 깎아 덕장에 매달기만 하면 지리산 바람이 알아서 감을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며 달콤한 곶감을 만들어 주었는데 기후가 변하다보니 예전처럼 해서는 망하기 딱 좋다. 곶감은 하늘과 동업이라고 했는데 동업자의 배신으로 망하는 사람이 속출하다 보니 이제는 설비와 동업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하늘과 동업하든 설비와 동업하든 감을 얼렸다가 녹이기를 반복해서 달콤한 곶감을 만드는 원리는 같다. 깎아 매달기만 하면 되던 일이 이제는 설비 투자를 해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나는 십 년째 조금씩 투자를 해왔다. (다시 말해 십 년째 곶감 팔아 번 돈을 설비업자가 가져갔다는 말이다.) 그만큼 귀감의 품질이 좋아지고 단골도 늘어 생산량을 늘리다 보니 그만큼 인건비도 더 들어가고 유지비도(내 허리 유지비는 포함하지 않음) 적잖게 들어가서 결코 만만치는 않다. 올해는 냉해와 장장장마로 감 작황이 평년의 30% 수준이어서 원료감 가격이 작년의 두 배로 올라 곶감 농가에서는 생산량을 대부분 줄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올해 곶감 농사는 사실 크게 재미가 없게 된 것이다. 어제 휴일도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기에 곶감 작업을 쉬고 하늘만 쳐다봤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비가 오면 곶감이 마르지 않는다. 곶감이 잘 되려면 우짜든동 찬바람이 불고 날이 맑아야하는데 오늘 아침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맑다. 고맙게도 지리산 상봉에서 서풍이 불어 내려오고 있다. 얼음으로 만든 화살같이 차가운 바람이 지리산 단풍을 스쳐 내려와서 곶감에 단풍을 입혀주겠기에 나는 덕장에 모든 창을 활짝 열어놓았다. 뽕나무에 가득하던 잎은 모두 떨어졌고 감나무마다 남겨둔 까치밥도 몇 개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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