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관상을 받았답니다. 한국에 온지 12년을 넘기면서 많은 상을 받아 왔지만 이번 장관상은 개인적으로는 최고 정점에 올랐다고 생각할 정도로 영광스러운 상인 것 같아요. 동네에서 ‘다문화 전국 농업인 경진대회sns부문 대상, 다와씨 장관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마을 입구에 걸어 주시고 농협에서도 농협 앞에 큼지막하게 걸어 주셔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한국에 살면서 두 아이 키우면서 열심히 산 보람이 가득 느껴지네요. 특히 상금 중 일부를 함양군 장학회에 장학금으로 기탁하고 집에 돌아오니 왠지 모를 행복감이 밀려오고 가슴이 벅찬 어떤 감동이 스스로 느껴지는 자신을 느끼면서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 사회와 이웃을 위해 조금의 힘이나마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김장 담궈 주기, 벽지 장판 갈아주기 등의 자원봉사를 하는 남편을 따라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이 따라다닌 기억이었는데 이제야 어떤 의미를 느끼게 되는 듯 하여 스스로 조금은 성장한 느낌도 들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도 조금씩 찾게 되는 마음이네요.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된다더군요. 행복이 배가 되게 도와주신 그동안의 수많은 고마운 분들과 농협 관계자분들을 비롯, 마을 분들, 그리고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남편에게 이글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많은 축하를 해 주시고 기쁨을 함께해 주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겨울이 되니 날씨가 제법 매섭고, 아침으로는 정말 추운 계절입니다. 저희는 이제부터 또다시 험준한 일터와의 싸움이 시작이랍니다. 밤을 모두 판매하고 또다시 감을 일부 판매하고 나니 이젠 겨울 추위와 함께 찾아온 곶감 깎기가 시작이네요. 매년 하는 일인데도 조금 편해지거나 일이 줄지는 않고 여전히 변함없이 열심히 해야 하고 또 농촌에서는 열심히 해야만 조금의 삶의 안정이 유지가 되는 것 같습니다. 10세 된 아들이 갓난쟁이 아기일 때 감 바구니에 담요를 깔고, 아기를 담아두고 일했던 기억들... 6세된 아기도 큰애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감깎기 작업장 한 켠에 두고 깎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네요. 아기가 조금 자라고 나서는 어린 큰애가 작은 애를 돌보게 하고 일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큰애가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본 것인데 4살 터울에 6세 때부터 동생을 돌보았으니 참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지금은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여 바쁘게 일하는 엄마 아빠에게 작은 심부름도 하고 오히려 위로를 할 정도가 되어 그렇게 눈물겨운 일터는 아니어서 조금은 다행스럽고, 적응이 되어서인지 일하는 재미도 조금씩 있답니다. 사는 방식은 제각각이라지만 알고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해 본답니다.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의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든 것은 TV와 인터넷 등 정보망을 통해 간접 경험한 게 많지만 가까운 주변을 봐도 아무리 부자라도 때가 되면 죽게 되고, 또 행복하지 않게 사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게 인간이라지만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따라 행복은 바로 곁에 혹은 멀리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행복해지는 것은 어쩌면 남을 행복하게 해 주면 자신이 행복해지는 거 같아요. 남편은 항상 어릴 때의 어머니 말씀을 전해 주곤 하는데 “천당과 지옥은 환경은 같은데 그곳 사람들이 달라서 행복과 고통이 달리 느껴진다”는 거라는군요. 글로 표현하려니 어렵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행복은 나누면 더 커지고 고통은 나누면 줄게 된다는 이야기~ 우리 모두 그냥 듣고 넘기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제부터 가까운 곳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이뤄 보시길 바랍니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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