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면 까닭없이 편안한 자리가 있습니다. 평범 속의 비범이라 할만 합니다. 광양에 있는 옥룡사지는 그러한 곳이라 합니다. 도선국사께서 35년을 살다가 본래 자리로 돌아간 곳입니다. 옥룡사 옛터는 작년에 광양 백운산 치유의숲에서 일할 때 처음 찾아보고는 마음에 포옥 담긴 치유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꼭꼭 틀어막힌 고목으로 우거진 동백숲 사이로 훤하게 드러나는 텅 빈 공간, 엄마의 품처럼 마음을 들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치유를 생각하면 당연하게 떠올려 보는 장소입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 어둠 속에 집을 나섭니다. 마음에 다짐을 했기 때문입니다. 밝은 빛이 내리는 땅! 광양으로 향합니다. 지리산 운봉고원 넘는데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백제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마로산성을 돌아 나와 백운산 아래 옥룡사 옛터에 들었습니다. 마로산성은 작년에 좋은 느낌이 남아 있어 찾은 것인데, 치유공간으로 썩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서 바로 내려와 옥룡사지로 차를 몰았습니다. 비 갠 하늘이 훤칠하게 옛터를 밝힙니다. 오목한 터를 감싼 천년 동백숲 바깥으로 솔숲이 호위무사처럼 담을 둘렀습니다. 직박구리들이 아무 걱정도 없이 목청을 돋우어 숲의 생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보랏빛 형형한 꽃향유가 계절의 눈빛을 마주하니 또한 가을인가 합니다. 그렇지만 주변이 온통 상록이라 가을이 코앞에 포옥 안기지는 않는군요.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여기에서는 천산만홍이 오히려 빛을 잃을 것만 같은데요. 옛터 안으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뒤이어 중년부부 두 쌍이 올라왔습니다. 나직이 둘러보면서 하는 말이 “몰라도 편안 안허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깨우침은 간결한 한 마디로 족하나 봅니다. 옥룡사 옛터는 고요한 기쁨이 있는 그러한 곳입니다. 쓸쓸하지만 허무하지 않고, 편안하지만 늘어지지 않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가리지 않고 편안하게 안아 줍니다. 무심한 듯 슬그머니 힘이 되어줍니다. 누런 잔디가 평평한 빈터에 앉아 솔빛 능선을 그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짙은 구름장 아래 한 귀퉁이가 열려 밝은 빛이 내리고 있습니다. 멀리 까마귀 우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든 땅을 조화롭게 만들어 낼 줄 알았던 옛 도인의 숨결이 되살아납니다. 잘 아시다시피 도선은 신라말 우리 풍수의 대가입니다. 전국에 당신의 손길이 미쳐 있지만, 지리산에서 활약하였고 광양 백운산에서 삶을 마쳤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풍수지리를 우리 사상과 지리에 맞게 창조해 내었다는 것이 도선의 위대함입니다. 지세가 약하거나 외세를 방어해야 할 곳에 적당한 자연물이나 조형물을 만들어 땅과 사람을 살려내는 비보풍수를 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위대함입니다. 허약한 것은 돌보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면 얼마나 건강한 삶의 터전이 될까요? 또 우리는 얼마나 건강해질까요? 고려 시대 사람들은 도선의 풍수를 ‘세상을 구제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법’이라 하였답니다. 잔디밭 크트머리에서 딱새 한 마리가 꼬리를 딱딱 흔들더니 포로록 날아갑니다. 자유자재의 몸짓에 생명이 움틉니다. 동백숲이 어깨를 맞댄 잘록한 고개를 넘어 도선국사 부도탑에 들었습니다. 동백 열매 하나와 씨 3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 탑비 앞에 두 손을 모읍니다. 집에는 작년 요맘 때 가져온 동백 씨 3개가 더 있습니다. 도선께서 옥룡사에 동백을 심은 까닭은 모자라는 땅의 기운을 북돋우려는 생명사상이었습니다. 그 혜안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천년 세월을 이어온 일만 그루의 동백숲은 자연 생태적, 심미적으로도 대단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생명사상이 녹아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갑자기 “이 동백 씨를 싹 틔워서 잘 키워보면 어떨까?” 어리숙하고 헤픈 생각이 드는군요. 떡잎 솟구치거들랑 천년 세월 이어서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상상력이 자라날 수 있을까요? 내려오는 길에 커다란 가시나무 옆 샘에서 물 한 모금 합니다. 물맛이 좋습니다. 맑은 물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졸졸졸 흘러나오니 지금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공간입니다. 옥룡은 날아가고 빈터만 남았지만, 하늘과 땅이 예를 갖춘 옥룡사 옛터에는 생생한 生이 생생합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