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전례 없이 긴 장마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으며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가 이제 현실로 닥쳐왔음을 체감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중한 병일수록 초기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오랜 시간 진행되고 나서야 증세가 나타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경우가 많다. 지구가 겪고 있는 온난화는 40여 년 전부터 이미 심각성이 제기되어 왔음에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은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각국 정부는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를 조직함으로써 빠르게 대응하는 듯 보였다. 한국은 1992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방안이 없이 ‘공동 노력한다’는 매우 추상적인 외교적 수사들로만 가득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38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1997년 교토 의정서를 채택함으로써 무언가 적극적인 노력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발효 시점이전인 2001년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의 부시 정부가 교토 협약을 탈퇴함으로써 공동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후로는 서유럽 국가들만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뿐 나머지 국가들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었다. 다행히 교토협약 이후를 준비하면서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195개국이 파리협약을 채택함으로써 교토보다 확대 강화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협약에서는 평균기온 상승을 1.5~2도씨로 유지하기로 하고 각국의 자발적 국가탄소감축량(INDC)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당시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2030년 배출전망치의 37%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조건은 교묘한 꼼수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과거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얼마만큼 배출량은 줄이겠다고 선언한 반면, 우리는 미래 전망치를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결국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이 큰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환경단체 등이 비판에 나섰지만 국내 언론을 비롯하여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은 이 꼼수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자국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미국 트럼프정부는 이 협약마저도 탈퇴함으로써 파리협약은 반쪽짜리 협약으로 전락했다. 2018년 인천 송도에서는 평균기온 상승범위에 있어서 파리협약보다 강화된 1.5도씨 미만으로 채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파리협약에서 각국이 내놓은 계획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이미 대략 1도씨 상승했다. 이제 0.5도씨 남은 것이다. 그런데 기후의 특성은 배출한 온실가스가 곧바로 평균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현재의 평균기온은 수십 년 전에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에 의한 결과이다. 따라서 지금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2040~50년의 평균기온에 영향을 주게 된다. 결국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더라도 지구의 온도는 어느 정도 계속 상승하게 될 것이다. 또한 7~8년 내에 배출을 멈추지 않으면 0.5도씨 상승은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볼 때 향후 7~8년 내의 배출 제로 상황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 점에서 이미 늦은 것이다. 특히 한반도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를 달리며 이미 2006년 평균기온이 1.3도 상승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으며 현재 남은 0.2도씨 상승에 이미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의 노력은 너무나 미미하여 세계로부터 ‘기후 깡패국’이라는 또 하나의 오명을 듣고 있다. 이 상황은 국민들의 생활 실천만으로 극복될 수 없다. 전체 산업체계의 혁명적인 변화 등 비상사태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는 정치권에서 담당해야 하며 그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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