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는 항상 바쁘다. 마치 폭풍 성장 중인 직장에라도 다니는 것 같다. 잠은 어디서 자는지 모르겠다. 골짝 여기저기서 바쁜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서리가 수시로 목격되는데, 우리 집에 하루 두세 번 오는 것은 마치 구내식당에 밥 먹으러 오는 것 같다. 엄천 골짝에 거주하는 모든 암고양이의 임신과 출산에 관여하려면 발이 열두 개 라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문득 지난봄에 길에서 보았던 그 어린 녀석이 꼬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그 때 보았던 어미고양이가 일을 당했고 부냥이 서리가 이어서 키웠다면 서리가 꼬리를 (심청이처럼) 데리고 다니며 사료를 얻어 먹여 키운 게 말이 되는 것이다. 시기도 딱딱 맞아 떨어진다. 서리가 데려온 어린 것은 서리의 꼬리를 잡고 왔다고 꼬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금은 꼬리도 많이 자랐고 더 이상 서리의 꼬리를 잡고 다니지는 않는다. 요즘은 수리랑 절친이 되어 둘이 죽고 못산다. 길냥이가 집냥이가 되느냐 아니면 영원한 길냥이로 남느냐는 전적으로 냥이 자신에게 달려있다. 수리는 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집냥이가 되기로 작정한 것처럼 다가왔다. 냐옹~하고 내 발목에 착 달라붙어 목덜미를 비벼댄 게 다지만 올려다보는 간절한 눈빛은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했다. 여전히 길냥이인 꼬리와 서리는 인간이란 원래 믿을 수가 없는 종족이니 그깟 밥 좀 얻어먹는다고 마음까지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오늘은 아침에 현관문을 여니 수리와 꼬리가 현관 앞에서 아침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꼬리가 나를 보고 하악질을 두 번 하더니 빈 밥그릇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꼬리의 하악질에 악의는 없었다. 내가 이렇게 용감한 고양이니 조심하고 순순히 밥을 내 놓으라는 것이다. 마치 연극배우가 거울을 보고 어설프게 연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래 밥을 줄께 꼬리야~”하고는 밥을 현관 안쪽에 부어놓고 문을 닫았다. 수리는 즉시 개구멍으로 들어왔고 꼬리가 들어오는지 지켜보니 자존심은 좀 상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하며 쭈삣쭈삣 들어와 수리가 먹는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래 꼬리야~너는 정말 용감한 고양이구나 어디 가도 밥은 굶지 않겠어~ 많이 먹어라~ 오늘 읍에 나갈 때 캔도 몇 개 사올께~”하고 놀려주었다. 만일 꼬리가 지난 봄 산책길에서 보았던 그 어린 녀석이 맞다면 한동안 사료 봉다리를 들고 다녔던 아내의 정성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오늘 저녁식탁에서 아내가 느닷없이 꼬리는 서리랑 얼굴 특징이 너무 닮았다는 말을 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내가 이 글을 읽은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비슷한 말을 한 적도 없는데 내가 이 글을 막 썼는데 우연히 아내가 서리와 꼬리는 부자지간 같다는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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