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학교 동기들이 나누는 카톡방이 있다. 어릴 적부터 같은 마을에서 살기도 하고 좀 떨어진 곳에 살던 친구들의 모임이다. 거기에는 여자, 남자 누구든지 동기들이면 다 같이 참여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55년 전의 이야기꽃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한 사람, 두 사람 카톡방에서 사라지기 시작을 했다. 사정을 살펴보았더니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난 후부터다. 나는 보수, 너는 진보, 나는 보수골통, 너는 사회주의자, 졸지에 정치와 이념 이야기로 접근하다 보니 그렇게 재미있게 카톡방에서 나누던 친구들이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에 이르는 남녀공학의 이야기들과 성인이 되고 손자손녀들을 본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출석을 부르게 되었다. 경인지역, 부산지역, 고향지역에 거주하는 동기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출석 확인을 하게 되었다. 끝까지 출석에 응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좋던 친구를 잃어야 하는 허탈감은 무엇 때문인가? 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친구를 보내야 하는 걸까? 가슴 아픈 일이다. 그날 밤 나는 내 주장만을 강하게 어필했던 일이 친구를 잃어버리는 일이 아니었던가 생각하면서 카톡에 나타나지 않는 친구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작금에 국감이 지나갔다. 올해의 국감의 이슈는 누가 뭐라 해도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야기들이다.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은 27일 일제히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해임과 사퇴를 일제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김모의원은 이 날 페이스 북에 “윤총장은 우리시대 마지막 정치검찰로 기록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더 이상 검찰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몽니를 부리지 말고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힘은 “윤석열 사퇴 몰이가 시작됐다”고 반발 하면서 이 같은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다. 국민의 힘 김모 교수는 이 날 페이스 북에 “결국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연속 발동이 윤석열 검칠 총장을 몰아내기 위한 의도였음을 드러낸 것”이라며 추장관과 여권을 향해 “역사에 남을 죄를 짓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옛날 중국의 초나라 장왕이 큰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가 길어져서 밤이 되자 장왕은 촛불을 밝히게 하고 잔치를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장왕은 자기가 사랑하는 허희에게 명하기를 잔치 참석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라고 하였다. 허희가 대부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며 도는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잔치 자리의 모든 촛불이 일시에 꺼지고 잔치 자리는 암흑천지가 되었다. 내시들이 불씨를 가져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 알 수 없는 한 대부의 손이 허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희는 대부를 밀어내며 그 대부의 관 끈을 잡아 끊었다. 대부는 놀라서 손을 놓았고 허희는 관끈을 들고 장왕에게 가서 그 일을 고하여 속히 불을 밝히고 그 대부를 잡아 벌하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장왕은 급히 말하기를 아직 불을 켜지 말라고 하며 모든 대부들에게 당장 관 끈을 끊으라고 명하였다. 거추장스러운 관 끈을 끓고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다. 만일 관 끈을 끊지 않는 자가 있으면 자기와 즐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겠다고 했다. 이 말에 허희가 항의했으나 장왕은 자신이 대부들과 즐기기 위해 큰 잔치를 벌여 취하도록 마시게 했고 그 일로 대부를 괴롭히면 잔치를 베푼 의의가 없어진다고 설명해주었다. 허희도 장왕의 도량에 감탄했고 후세에 염옹은 이 일을 다음과 같은 시로 읊었다. ‘어둠 속에서 여인에게 손을 대는 것은 취한 사람의 상정이라 그런데 아름다운 손이 바람처럼 관 끈을 끊었도다. 장왕의 그 바다 같은 도량을 알 수 있으니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느니라’고 했다. 이 시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고기가 사는 물로 표현된 장왕의 태도는 자신이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이 너무 맑으면 안 된다”는 말은 남의 잘못을 일일이 꼬집어 내면 안 되고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 삶을 덜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웃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과 부합되는 것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삶의 자세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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