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이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고양이를 보았다. 저녁 먹고 아내랑 산책 중이었는데 고개 넘어 강둑길을 지나 다시 마을로 헐떡거리며 올라오던 참이었다. 근데 얼핏 보니 그 어린 고양이가 조그만 쥐를 물고 있었다. “아~ 신기하다~ 저 어린 것이 쥐를 잡았네~” 아직 젖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어린 것이 어떻게 쥐를 잡았을까 싶어 신기해하는데 마침 근처에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가 보였다. 어미는 새끼랑 입은 옷은 달랐지만 신랑이 만일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 서리였다면 이야기는 성립이 된다. 어미고양이가 쥐를 잡아 새끼를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어미 고양이도 영양상태가 안 좋은 듯 왜소하고 허약해보였다. 고양이가 새끼를 한 마리만 낳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한 마리밖에 안 보이는 걸 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다른 새끼들은 살아남지 못한 걸로 보였다. 작은 쥐를 물고 있는 새끼도 한 눈에 허약해 보였다. 새끼는 물고 있는 쥐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젖을 먹든지 사료도 불린 걸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어미가 주는 대로 쥐라도 먹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한동안 지켜보다가 나비야~ 하고 다가갔더니 새끼는 쥐를 대롱대롱 물고 콩밭으로 스며들었다. 아내는 어린고양이가 눈에 밟힌다며 다음 날부터 산책할 때 사료를 한 봉다리 들고 다녔다. 그 여린 새끼를 다시 만나면 먹이려고 사료 봉다리를 계속 들고 다녔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뒤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초여름이었다. 우리 집에서 매일 밥 도장을 찍는 길냥이 서리가 자기를 닮은 어린 고양이를 한 마리 데리고 왔을 때 나는 서리가 숨겨놓은 새끼를 데려온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고양이 수컷이 새끼를 양육하는 것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설마? 아니겠지? 하고 말았다. 어쨌든 서리는 새끼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는데 내가 사료를 부어주면 어린 것을 먼저 먹이고 남은 걸 자기가 먹었다. 처음엔 암고양이라서 데리고 다닌다고 의심했는데 뒤를 살펴보니 방울이 달려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서리가 자기 새끼를 데리고 왔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 것이다. 길냥이의 세계에도 영역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엄천 골짝은 서리의 영역이다. 골짝 여기저기서 서리가 보인다. 그래서 엄천골에서 태어나는 고양이 새끼의 상당수는 서리의 자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부분일 수도 있겠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 근거가 있다. 서리의 얼굴을 보면 일단 조폭이 연상된다. 멋있어야할 수염 절반이 부러져 있고 볼때기 오른쪽 왼쪽 다 큰 흉터가 있다. 서리는 하루 두세 번 우리 집에서 밥 도장을 꼭꼭 찍고 있기에 보급투쟁 중 생긴 상처는 아니다. 먹거리가 보장된 수코양이 얼굴에 피가 마를 날이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더 많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과 권력투쟁을 하다 생긴 훈장인 것이다. 서리 볼 양쪽에는 크고 깊은 상처가 무공훈장처럼 새겨져있다.(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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