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뚝 떨어졌다. 가을도 끝자락이다. 집 없는 달팽이는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궁금하다. 어쩌다 집 없는 달팽이가 내 별명이 되어 이 친구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 없는 달팽이는 일반 달팽이에 비해 비호감이다. 달팽이의 껍질은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고 수분증발도 막아주고 숨 쉴 수 있는 산소통 역할과 냉난방이 가능하다. 달팽이에게 살기에 꽤나 좋은 조건을 갖춘 이동식 주택인데도 평생 집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멍에를 벗어 던지고 홀가분하게 다닐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해 집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얻었다. 고래가 숨쉬기 좋은 육지를 떠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결단과 견줄만한 일이다. 이런 퇴행진화는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다른 형태로 변모해 적응해가는 자연생태계의 한 모습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옛날이 더 살기 좋았고 더 공정하고 더 안전하고 더 자유스러웠다고 옛날로 회귀하려는 퇴행적 심리가 팽배해진 것 같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달팽이와 관련된 사자성어 중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 간의 전쟁도 우주의 방대함에 비해 보면 달팽이의 뿔 위에서 싸우는 것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일이라는 내용이다.
각종 펀드 사기와 거짓말 공방으로 해가 뜨고 지는 세상이 되었다. 달팽이가 사람들은 왜 그런 일로 다투느냐고 질책을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코로나 방역 마스크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 더 뻔뻔하게 거짓말 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늘은 정직한 자를 지켜준다고 했으니 그 말이라도 믿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집 없는 달팽이가 우리 눈에는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작은 동물이지만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 들을 많이 누리고 살고 있다. 집을 버렸으니 집값상승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버둥거릴 일이 없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걱정에 대해서도 집 없는 달팽이의 코 앞엔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부자나 고위공직자 자녀들 보다 나은 특혜를 누리고 산다.
사람은 결혼하기 위해 외모, 집, 직장, 차, 결혼비용 등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고 다른 동물들은 짝짓기를 우해 경쟁자와 혈투를 벌려 이겨야 하고 귀뚜라미나 매미는 밤낮으로 큰소리로 세레나데를 불러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집 없는 달팽이는 암수동체이므로 이성에 대한 절박함이 덜 할 것 같은데 사랑하나쯤 알고 사는지 다른 대상을 찾아 짝짓기를 한다.
집 없는 달팽이는 새끼에 대한 애착도 없고 가족관계도 없으므로 육아나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고 국경이 없으니 군대에도 갈 필요가 없어 경비 부담도 아빠 엄마 찬스도 쓸 필요도 없다. 모두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기도 하고 손이 없으니 직위를 이용한 뇌물수수나 성추행으로부터도 멀어져 있어 처벌을 받거나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우려도 없다. 이렇게 깨끗하게 살고 있으니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고 자신 있게 온몸을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서도 깨끗하지만 죽어서도 깨끗하다. 땅속에서 죽으면 그뿐이고 재수 없어 밖에서 죽어도 뼈가 없으니 사리를 수습할 필요도 없고 수분은 증발되어 귀천하면 된다. 흔적이야 조금 남겠지만 비 한번 오면 깨끗해진다.
한 번도 바쁘게 살지 않았던 집 없는 달팽이도 추위에는 못 견디는지 때 이른 동안거에 들어간 것 같다.
이 멋진 친구를 다시 만날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 평생 묵언수행중이니 반갑다는 인사는 못 받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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