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추석엔 달을 본 사람 보다 TV를 본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무대 공연만을 고집하며 방송 출연을 거부해왔던 나훈아씨가 15년 만에 방송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름 하여 “대한민국 어게인” 콘서트였다. 가황 나훈아씨가 코로나19 때문에 지쳐있는 국민들을 위해서 비대면으로 자선 콘서트를 열었던 것이다. 이날 닐슨코리아 공식 집계로는 시청률이 무려 29%를 기록했다고 한다. 73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나훈아씨는 2시간 반 동안 30곡 이상을 불러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과연 나훈아씨는 가황(歌皇)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고, 시청자들은 나훈아 콘서트를 통해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공연 중에 나훈아씨가 남긴 발언을 두고 네티즌들과 여야 정치권에서 쏟아낸 해석은 가관이었다. 이른 바 아전인수(我田引水), ‘제 밭에 물 대기’식의 해석이었다. 이를 두고 나훈아씨의 진짜 정치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우리는 지금 힘들고 많이 지쳐 있다. (나는) 역사책이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 나라를 지킨 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인 우리 국민들이었다. 국민에게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1등 국민이다!” 나훈아씨가 공연 중에 남긴 이 멘트를 두고 정치인들은 각기 소감을 밝히면서 자기 당에 유리한 해석을 내 놓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인생의 고단함이 절절히 녹아있는 그의 노래는 제 인생의 순간들을 언제나 함께했고, 여전히 우상이다.”라고 했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십 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애를 쓰고는 있지만, 이 예인(藝人)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반성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한 소절 한 소절, 한 마디 한 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었으며, 국민 모두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야당과 부수 언론들은 마치 나훈아가 야당 대권주자나 되는 양 ‘나훈아 부추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 없이 여당 때리기를 해 왔음에도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실에서 국민의힘당에서는 모처럼 응원군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나 싶다. 여당은 여당대로 나훈아씨의 이번 공연을 호평하고 나섰다. 나훈아씨의 2020년 신보 ‘아홉 이야기’ 중 마지막 9번곡 ‘엄니’라는 노래 때문이다. 이 노래는 나훈아씨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을 위해서 1987년에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그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청년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엄니(어머니)들에게 헌정하려고 이 곡을 작사 작곡했다. 이어 광주 MBC와 협업 하에 자비로 2000여 개의 테잎을 제작하려 하였으나, 당시 정권의 방해로 무산된 바 있었다. 부산 출신인 나훈아씨가 호남 방언으로 직접 작사했고, 호남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가사를 감수까지 받았다고 한다. 나훈아씨는 지난 2018년 광주 콘서트에서 본인이 직접 이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나훈아씨는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탄압이 있었던 1980년대를 그렇게 보내고, 33년이 지난 후에야 ‘엄니’라는 곡을 발표하게 되었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반색하는 이유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어느 정파를 떠나서 오로지 자신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강단 있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이다. 모 재벌가가 사적(私的)인 자리에서의 공연을 요구했을 땐 “내 공연을 보려거든 직접 내 공연장에 와서 티켓을 끊고 내 공연을 보라!”고 했다거나, 북한 무료공연에 대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거부했었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흔들리지 않는 그의 예술혼과 줏대가 여실히 드러났다. 필자는 전문 연예인은 아니지만, 때때로 공연 사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훈아씨의 입장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공연자가 무대 위에서 던진 멘트 한 마디를 두고 왈가왈부하거나 서로 자기편의 대변자인 양 착각하는 것은 오히려 무대 위에 서있는 광대가 웃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죽이나 못났으면, 평범한 연예인 한 사람의 말에 그렇게들 목을 걸까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한때는 근거도 없는 나훈아씨의 스캔들을 들춰가며 난도질을 했던 언론사들조차 ‘나훈아 추켜세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꼴불견이다. 염치가 없어도 저렇게 염치가 없을까 싶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고 했던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득이 되면 입을 헤벌리고 딸랑거린다. 돈벌이가 되거나 이득이 되겠다 싶으면 남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이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이런 언론들과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쓴웃음조차 짓지 못하는 것은 잘났다고 하나 못 난 내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2020년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는 성경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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