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목서 꽃이 올해 대박이 났다. 앞마당에 금목서를 심은 지 어언 이십년이 다 되어 가는데 둥그런 수형의 나무 전체에 황금가루를 가득 뿌려놓은 듯 눈부신 금빛으로 꽃이 피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비가 와서 절정의 금목서 꽃을 한방에 떨어뜨리곤 했기에 올해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고맙게도 올해는 아직 비가 오지 않고 있다. 금목서는 향기가 유별나게 좋아 샤넬5 향수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좋은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기에 만리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 집은 지리산둘레길 옆에 있는데 이번 추석 연휴에 둘레길을 걷는 일행이 길을 걷다가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무심코 주거침입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이 좋은 금빛향기를 저장할 수만 있다면 이맘 때 한꺼번에 소비할 게 아니라 내가 연중 판매하는 곶감과 함께 냉동 창고에 보관해놓고 싶다. 그래서 곶감 빼먹듯 생각날 때마다 향기를 한소쿠리씩 꺼내 필요한 곳에 쓰면 어떨까?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나는 곶감을 내어놓는데 이때 이 귀한 향기도 같이 한 접시 더하면 참 좋을 것이다. 추석 전 마지막 택배 나가는 날에는 밤늦은 시간에 택배 기사가 곶감을 가지러 왔다가 보이지 않는 향기에 놀라 이거 무슨 향기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은근히 우쭐해지는 걸 감추고 “글쎄 금목서 향기가 이래 좋네요~” 라고 했더니 잘못 알아듣고 뭐라고요? 뭐라고요? 하다가 좌우지간 이런 향기는 첨 맡아본다며 바쁘지만 않으면 나무 아래 잠시 서있다 갈 텐데 하고는 아쉬워하며 갔다. 아내와 나는 평소 점심 먹고 산책을 하는데, 오늘 추석날, 아내가 한가위 추석이니 달빛을 밟아보자고 해서 저녁 먹고 산책을 하게 되었다. 어제만 해도 크고 밝은 보름달을 보았기에 내심 바삭바삭한 달빛 밟기를 기대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저녁엔 짙은 구름이 달을 가렸다. 어쩔 수 없이 머리에 랜턴을 달고 달 없는 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데 집근처 길에서 달콤한 향기가 훅 하고 다가와 깜짝 놀랐다. 집 근처라고 했지만 앞마당에 있는 금목서와는 제법 거리가 있었기에 금목서 향이 꽤 멀리까지 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괜히 만리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 것이다. 올해는 금목서 향기가 이렇게 좋으니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까? 올해 곶감 농사가 대박이라도 날까? 금년엔 장장장마에 태태태풍이 이어져 감 작황이 전국적으로 안 좋기는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하면 될 것이다. 아니면 금년 중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올까? 올 추석에는 코로나 때문에 도시에 있는 아이들이 집에 오지를 못했는데 만일 백신이 보급이 된다면 내년 설날에는 떨어져 사는 가족이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올 추석이 코로나 확산의 중요한 기점이라 전국적으로 귀성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나도 그런가보다 올 추석엔 아이들을 못 보나 보다 하고 받아들였는데 막상 아이들이 없는 추석을 보내고 있자니 정말 허전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다른 집에는 도시에 있는 자식들이 많이 내려온 걸 보니 우리도 아이들을 내려오라고 할 걸 그랬나? 우리가 너무 소심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번 추석에 아이들이 내려왔으면 금목서 향기도 더 달콤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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