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를 보고, 혹은 그것에서 비롯된 전반적인 역사 교육을 받은 한국의 사람들은 일본의 우리나라 침략 과정과 끝내는 병합당하는 결과에 큰 민족주의적 자극을 받게 되며, 그로 인해 대중적으로 일제강점기와 그 전간기에 대해서 조선의 인식은 대부분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마수에 쓸려나간 불쌍한 약소국’정도이다. 즉, 조선은 일방적인 피해자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사실 애석하게도 당시 상황을 따져 보면 조선에게는 나라가 망할 만한 이유가 너무 많이 있었고, 그렇기에 일제에게 서서히 집어삼켜지는 그 순간에도 나라는 식물인간 상태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의 주장은 절대로, ‘조선은 망할 만한 짓을 했으므로 일제가 침략해서 병합당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가 아니다. 단지 ‘조선은 곯고 곯은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었고, 국가의 동력과 사회적 원활이 너무나 침체되어 사실상 국가가 시한부 상태에 접어들었다.’라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일제는 조선에게 어떠한 이익이나 편리함도 안겨 주지 않았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본인이 논란이 될 만한 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없었으면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망했을 것이다, 일제가 아니었더라도 실제 역사에 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말이다. 그것도 내부에서의 반란 혹은 사회적인 혁명으로. 만약 믿기 어렵다면 동학 농민 혁명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과연 그때 조선 정부가 자체적으로 동학군을 진압했는지를.
조선을 구한말에 방문한 여러 외국인들의 수기가 아직까지 남아있는데, 이들의 조선에 대한 묘사와 조선인들의 생활 모습을 기록한 부분을 보면 아주 기가 찰 지경이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여행가였던 헤세바르텍의 기록인데, 이 사람의 기록에서 조선이 어떤 생활상을 지니고 있었는지 말해주도록 하겠다.
“도로도 없고, 집도 없고, 마차도 없다. 사람들은 다 무너져가는 흙집에서 살고, 집 안은 매우 더워 여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서울에는 예술업자나 상인들, 수공업자들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상인들을 불러 판매를 부탁해야 했을 정도며, 그렇게 해서 얼굴을 보인 판매품들은 조악하기 이를 때 없었다. 조선인 남성 중에서 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집안이나 집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중국식 파이프를 입에 물고 빈둥거리거나, 골목길 한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거나 낮잠을 잤다. 반면 작고 추하며 고생 때문에 여윈 여자들은 살림을 도맡으며 요리하고 빨래를 했다. 모든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다...(중략)조선의 왕은 중국 황제의 충실한 신하이다. 조선에서 정치와 사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조선에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일한 계층은 ‘양반’이기 때문이다...(중략)”
자, 어떠한가? 이 글을 보고 나서의 감상은? 혹여나 이것이 개인의 주관적인 서술이라고 반박할만한 사람에게 말하자면, 위와 같은 기록은 호러스 뉴턴 알렌 같은 선교사의 수기에서도 나오는 교차검증된 진실로, 거기다가 이 기록이 역사학계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당대에 쓰여진 ‘1차 사료’임을 감안했을 때 저런 일련의 부끄러운 생활상은 결코 거짓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세도정치를 거치며 사실상 국가의 행정, 사법, 입법을 아우르는 모든 능력이 상실되었으며, 그럼에도 변화하는 시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구시대적인 남녀차별과 신분차별로 사실상 스스로가 자신을 옥죄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음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일제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조선이 망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닌, 조선이 망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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