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탈레스의 물음은 밀레토스 지역을 넘어 퍼져나갔다. 그리스 북부 압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 역시 그 과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원자론’이다. 모든 세계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와 빈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생각은 놀랍게도 현대과학의 결론과 매우 유사하다. 미국의 위대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만일 인간의 모든 지식이 사라지고 오로지 한 문장만을 살릴 수 있다고 할 때 “모든 물질은 원자(atom)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물론 지금의 원자는 원래의 의미와는 달리 더 작은 입자로 나누어질 수 있지만 원자가 기본 단위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2천 년 전 데모크리토스의 통찰력은 믿기 힘들 정도로 정확하다. 데모크리토스 이후 그리스에는 또 한 명의 원자론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에피쿠로스였다. 그는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는데 우리에게는 원자론자보다는 쾌락주의자로 더 알려져 있다. 사실은 그가 말하는 쾌락은 외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욕망을 부정한 내적인 평정(아타락시아)으로 에피쿠로스는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은 로마 시대의 위대한 서사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에 본성에 관하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에피쿠로스가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을 답습한 후계자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데모크리토스를 계승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는 항상 결정되어 있는 경로를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는 우발적으로 예상된 경로를 벗어나는 ‘편위(클리나멘)’가 일어날 수 있으며 결국 세계의 변화는 결정론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비결정론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역사는 결정되어 있다고 본 데모크리토스와 달리 에피쿠로스는 언제나 우연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두 사상가 사이에는 엄청난 세계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후 2천 년이 지난 19세기 철학자 칼 맑스는 20대 초반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의 주제로 이 두 자연철학자의 차이에 대한 것으로 선정했다. 당시에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뉴턴의 물리학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맑스는 오래 전 루크레티우스의 고전으로부터 에피쿠로스 원자론을 접하면서 이후 그의 사상의 중심이 되었던 변증법적 유물사관의 뿌리를 발견했다. 맑스주의를 심화발전시켰던 알튀세르의 여행자 비유에 의하면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은 마치 목적지가 분명하기에 도착할 때까지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상황인데 반해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은 분명한 목적지가 없는 여행자가 도중에 우연히 만나는 사건들에 개입하기도 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시대 다윈은 결정론적 관점으로 진화를 인식했던 생물학자들과 달리 진화의 목적은 없으며 생물 종이 자연 환경과 계속적인 상호작용하면서 공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존에 적합한 종들이 살아남는 것이라 주장했다. 당시에 그의 주장은 매우 혁명적이어서 다윈 스스로 『종의 기원』 출간을 미루다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월리스의 등장으로 출간하게 되면서 많은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그의 진화 이론은 진실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 50여년이 지난 후 그가 옳았음이 밝혀졌다. 물리학에 있어서도 19세기까지 절대적 진리로 자리한 뉴턴의 결정론적 세계관은 20세기 들어오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20세기 말 과학자들은 복잡성으로 인해 예측이 제한되고 우연이 지배하는 영역이 인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결정론이 주류를 이루어 온 물리학의 역사에서 우연적 세계관이 새로운 과학혁명의 주체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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