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른 아침에 학교 주차장에 택시가 섰습니다. 30대 중반의 여인이 꽃바구니와 케이크를 들고 내립니다. 우리 학교의 졸업생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 같습니다. 교무실에 와서 어느 선생님 성함을 이야기하더니 선생님을 뵈러 왔다고 합니다. 십 여분 지난 후 찾던 선생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너무도 환한 얼굴로 선생님을 보더니 이내 눈물을 흘립니다. “선생님, 너무 죄송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라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립니다. 선생님과 그 여인이 휴게실로 가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둘의 사연을 궁금해 합니다. 몇 십 분의 시간이 지나 선생님이 그 여인을 보내고 오셨습니다. 십여 년 전에 다른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제자인데, 학창시절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귀한 은사님이라 고마움을 늘 가슴 깊이 간직하고 지냈는데 이런 저런 일로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며칠 전 평소에 존경하던 은사님께서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소식에 밤새 울다가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지금 선생님을 뵙고 고마움을 전하지 않으면 또 후회할 일을 만들 것 같아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고 하며 선생님께서 학교 다닐 때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셨다며 일일이 고마움을 전하더랍니다.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며 후배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냥 선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이야기들을 해주었는데 어느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참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참 기분이 좋대. 아재 개그 소리를 듣더라도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고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잘잘못은 바로 가르쳐 주고 그렇게 사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하시며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선생님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삼십 몇 년간 교육 현장에서 목소리 높여가며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신 선생님께 훈장처럼 다가온 아침 손님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2.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작년 외사촌들 벌초모임에 참석해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내년에는 낚시 좋아하는 외사촌 동생은 쏘가리를 아이스박스로 가득 채워 오고, 사냥 좋아하는 외사촌 형은 산돼지를 한 마리 준비하고, 고종사촌인 제가 산양삼을 준비해서 잔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가 일파만파로 퍼져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로 격상되는 바람에 시골에 있는 형제들이 벌초를 하고 조용히 지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외사촌 큰형이 와서 점심을 같이 먹고 외조부모님 외삼촌 외숙모 묘에 성묘를 하고 조용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형이 어린 시절 고모님을 추억하며 고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고모님은 다른 사람들 하고는 달랐어. 시골에 태어났어도 우리 고모님은 깬 사람이었어.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출하려고 몇 번이나 결심했는데도 고모님이 말리시는 바람에 참고 지냈다 아이가. 동생은 느그 집이 부잣집이라 먹을 것이 많아도 우리 집에 와서 만날 할매가 주시는 주먹밥을 젤 좋아했제. 안산에 토끼몰이 다니고 냇가에서 물고기 잡고 어릴 때 내가 니 마이 데리고 놀았제.” 형의 말을 들으니 사오십 년이 지난 그때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라 조카들에게 저를 특별히 부탁했던 것들도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며칠 후 외사촌 동생에게 ‘형님 시골에 볼 일 있어 가는데 전화 한 통 주세요.’하고 문자가 왔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주소를 찍으라고 합니다. 한 시간 쯤 지나서 “형님 집 앞인데 좀 내려오세요.” 하며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려갔더니 쏘가리를 한 봉지 내어 밉니다. 쏘가리 노래를 불렀더니 동생이 손질해서 냉동 보관했던 25자 쏘가리를 12마리나 가져왔습니다. 감사 인사가 채끝나기도 전에 동생이 차를 돌려 나갑니다. 형제들이 뭔지, 참 가분한 사랑을 받습니다. 아내가 매운탕거리를 급하게 준비해서 외사촌 동생의 사랑이 듬뿍 담긴 쏘가리 매운탕 원 없이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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