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터키 서해안에 해당하는 이오니아 지역의 밀레토스에 살았던 탈레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과학적 사고를 했던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질문은 “만물의 본질(arche)은 무엇인가?”였다. 탈레스 이전의 인간이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고 볼 수 없겠지만 늘 신화(mythos)에서 그 답을 찾았다. 따라서 그리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탈레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인간의 순수 이성(logos) 안에서 해결하려 했기에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물’을 제시했다. 실제로 생명이 살아가는 지구에서 물의 중요성은 절대적인 만큼 매우 합리적인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탈레스는 이외에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냈고, 일식이나 기후를 예측했으며, 이집트에서 기하학을 소개하면서 스스로 여러 증명들을 남기기도 했다. 또 전기 및 자기 현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등 놀라운 사고력을 발휘했다. 같은 지역에 살았던 탈레스의 제자이자 동료인 아낙시만드로스도 스승을 능가하는 과학적 발견을 남겼다. 천둥과 번개, 지진은 자연적 현상이며, 지구는 우주에 떨어지지 않고 떠 있는 천체라는 것을 알아냈다. 또 과거 지구는 물로 뒤덮여 동물은 모두 바다에서 살았지만 육지가 드러나자 이동하게 되었고 인간도 다른 동물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했는데 놀랍게도 진화생물학적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 역시 스승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답은 매우 달랐다. 세계는 물, 불, 흙, 공기가 상호작용하며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배후에서 모든 물질을 만들어내며 세계의 균형과 조화를 가능케 하는 보이지 않지만 무한하고 영원한 기본물질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물질을 ‘무한자(apeiron)’라고 불렀다. 물론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은 깊은 사유에서 나온 것이지만 실험적인 검증 절차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는 믿음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어떻게 보면 탈레스 이전 신화시대의 본질에 대한 믿음과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역기서 최초의 자연철학자들 간에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탈레스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의 감각을 통해 언제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인 물을 생각한 반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존재 여부 자체도 불확실하며 심지어 신화적이기까지 한 무한한 존재인 무한자를 기본으로 삼았다. 어떤 생각이 더 ‘과학적’일까? 물론 과학적이라는 말에 대한 분명한 규정이 필요한데, 여기에서는 현대 과학이 자연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방식을 기준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탈레스보다는 아낙시만드로스가 과학적 사고에 더 가깝다. 아니 어쩌면 정확히 현대과학이 택하는 방법론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 특히 물리학은 ‘보편적’ 원리와 법칙을 탐구하는 이론 체계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우주의 모든 곳에서 성립한다는 의미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은 20세기 이후 더욱 보편적인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대치되긴 했지만 지구에서 물체의 낙하운동과 행성의 공전을 모두 정확히 기술할 수 있었다. 만유인력법칙이 보편성을 얻게 된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력’의 존재를 가정한 후 이를 보이는 현상과 일치하는 수학적 법칙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뉴턴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력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또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가정은 적어도 20세기 직전까지 흔들리지 않는 진리였다. 보편 과학은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들을 우리의 감각이 미치지 않는 근원적인 존재를 토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지는데 물질의 성질을 결정짓는 핵심적 소립자인 ‘전자(electron)’는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존재다. 그리고 전자와 같은 소립자의 종류는 매우 많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정밀한 분석 이전에 신화적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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