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장성하여 출가한 뒤로 그동안 생활비의 큰 몫을 차지했던 교육비가 안 들어가니 이제 시골 농부네 가계에 여유가 생기려나 싶었는데 뜻밖에 냥겔지수가 높아 수리수리마수리 도루아미타불이 되어버렸다. 고양이를 키워보니(모시고 살아보니) 개와 달리 돈이 많이 들어간다. 동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마당 넓은 시골에 살면서부터 개를 여러 마리 키웠다. 많이 키울 때는 다섯 마리를 키웠다. 그중 하나가 새끼를 낳으면 일시적으로 열 마리까지 불어났지만 강아지 예방 접종 등을 내가 직접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돈이 들지 않았다. 나중에 그 다섯 마리가 모두 노견이 되고 어쩔 수없는 병이 들어 하나씩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는 제법 목돈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내가 동물병원에서 또는 동물약국에서 처방을 받고 직접 처치가 가능했기에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다르다. 만일 고양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병원에 모시고 가서 수의사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고양이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고 하는데 고양이 집사가 되어보니 그 말이 결코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알겠다. 고양이는 영리해서 돌팔이를 즉시 알아본다. 만일 내가 주사기를 들고 직접 예방접종을 한다든지 상처난 자리에 빨간약이라도 발라주려고 하면 즉각 발톱을 드러낸다. 무면허는 허용하지 않겠다며 심지어는 무시무시한 이빨을 슬쩍 보여준다. 하지만 병원에 가면 가운 입은 수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해서 진료에 적극 협조한다. 지금도 양치기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개는 결코 비싸게 굴지 않는다. 같은 상표의 사료를 구입해도 개 사료는 고양이 사료 값의 절반이다. 간식도 가끔 개껌 하나 던져주면 만면에 미소를 짓고 꼬리를(엉덩이도 일부) 흔들며 고마워한다. 진심이 느껴진다. 그런데 고양이는 껌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는다. 비스킷이라도 하나 던져주면 ‘시시하게 굴지 말고 캔이나 하나 따 보시던지 싫으시면 츄르라도 한 봉 따 보시지~’ 하고는 외면한다. 오랫동안 개를 키워왔던 나는 처음엔 살짝 당황스러웠다. (고양이는 참 도도하구나~ 하지만 까짓 것 건방을 떨어봤자지~)하며 콧방귀를 뀌었는데 이거 참 어찌 된 일인지 아내는 달랐다. 수리경인지 냥작인지 고양이 비위를 맞추지 못해 지금도 안달이다. 마트에 장보러 가면 고양이 간식은 절대 빼 먹지 않는다. 나는 사료에 필요한 영양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비싼 간식은 필요없다고 했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 고양이도 먹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순은 있다. 아내는 개 간식을 사는 데는 고양이만큼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사랑이와 오디가 좀 시끄럽게 짖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수리가 가족이 되고 길냥이 서리와 꼬리가 밥 먹으러 오고 난 뒤부터 개들은 가엾게도 사기가 떨어졌다. 처음엔 이거 웬 고양이냐고 고래고래 짖어대더니 이제는 고양이에게 친절해졌다. 개도 고양이도 누가 서열이 더 높은지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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