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선포되었습니다. 2020년 3월 11일, 인류 대변혁의 날입니다. 전 세계가 빗장을 걸어 스스로 고립무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3월 22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도시나 농촌이나 할 것 없이 잔뜩 몸을 사리고 둥지 속으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감에 온몸이 섬찟하게 일어섰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경남 사천의 시골 마을회관도 강제로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이웃집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무료함과 우울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생전 처음 장롱의 문양을 그려보았습니다. 달력을 뜯고 경대 서랍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볼펜을 들어 모양대로 선을 그어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당신의 그림을 바라보며 스스로 놀랬습니다. 숨겨진 재능이 발견되는 순간입니다. 코로나가 안겨준 선물입니다. 내가 신나게 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는 것은 축복입니다. 두드려보고 비추어보지 않으면 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참에 두려움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 번 해볼 일입니다. 작은 것이라도요. 5월 초순 집에 가니 어머니는 쑥스러운 듯 달력에 그린 장롱 문양 그림을 슬며시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인생 첫 그림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우와! 할매 그림 대기 잘 그리네요” 전광석화처럼 떠오르는 생각, “어머니가 드디어 취미를 발견하셨구나!” 순간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홀로 5남매 키우느라 평생 일만 해 오신 어머니, 마을회관에서 화투로 소일하는 노인 이미지는 참 딱한 모습입니다. 일손을 놓으면 그저 무료하고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홀로 집중할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은 삶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되겠구나!” 색연필과 스케치북, 4B연필과 지우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쉽게 할 수 있는 것, 그동안 찍어온 자연생태 사진으로 그림책본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는 다양한 식물 사진에 새와 곤충들 사진도 곁들였습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노모이지만, 어머니는 그걸 보고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젊어서 너무 많은 일을 하셔서 무릎과 어깨 관절이 점점 걷기 힘들 정도로 아프지만, 그림 그릴 때는 집중이 잘 된다고 하십니다. 흐릿했던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고도 하십니다. 실제로 집중하며 그리는 그림이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색칠에 집중할 수 있는 만다라 그림이나 손그림 워크북 등이 미술치료에 쓰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겁니다. 어머니는 유독 새와 나비를 좋아하십니다. 평범하지 않았던 남편과 시부모를 모시면서 어쩔 수 없이 견디며 참고만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심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지요. 돌이켜 보면 저도 어머니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습니다. 그동안 저만 바라보며 참 이기적으로 살아왔단 생각이 듭니다. 만 서른 즈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접고 산골로 들어가 마음 가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야생화 체험농장을 차려놓고 지리산으로 ‘풀꽃여행’을 다니며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해 마음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그렇게 십수 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 속이 어떤지, 또 가족과 이웃에는 어떻게 비춰지는 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철부지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해봅니다. 다시 어머니의 그림을 들여다봅니다. 그림책본을 보고 어머니가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금낭화입니다. 금낭화, 할미꽃, 섬초롱꽃, 기린초, 매발톱 등은 시골집에도 심겨 있어 어머니가 늘 보아오던 풀꽃입니다. 이 풀꽃들은 체험농장을 할 때 힘든 농사일을 도와주시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야생화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못나고 아픈 연결고리가 꽤나 깊습니다. 원앙 옆에 있는 그림은 할미꽃입니다. 이 그림은 어머니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나온 것입니다. 밝고 화사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비율이 첫눈을 끌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많은 분이 ‘좋아요’를 꾹꾹~ 눌러 주었습니다. 이 그림을 저의 카톡과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올려두었습니다. 그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소원하고 불편했던 어머니와 화해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그림 작업을 함께 지켜보는 일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드린 데 대한 사죄와 화해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다가서기 위한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삶의 고리를 한 겹만이라도 풀어낼 수 있으면 그런대로 괜찮은 뉴노멀(신인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팬데믹 2차 유행이 번지고 있답니다. 건강 특별히 잘 보살피십시오.‘상림속으로’를 통해 24회 동안 독자들에게 상림의 숨은 이야기를 펼쳐보였던 최재길 산림치유지도사가 이주부터 ‘치유공감’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재길 산림치유지도사의 글 속에 숨은 치유인자가 독자 여러분께 전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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